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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종합학교 무용원/꿈이 있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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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종합학교 무용원/꿈이 있는 지옥

입력
1997.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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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o 19’/하루 10시간 빽빽한 강행군 수업/그래도 춤이 좋기에 ‘즐거운 지옥’/그렇게 보낸 개원 2년 그리고 땀의 결실/국내 첫 대학무용단 ‘크누아’가 24·25일 공연을 갖는다꿈이 있는 지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원장 김혜식)을 그렇게 부르자. 매일 적어도 네 시간, 많으면 여섯 시간의 실기를 포함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7시까지 빡빡하게 수업이 이어진다. 점심은 틈틈이 먹어야 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 현재 재학생은 무용수를 기르는 실기과(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안무가를 키우는 창작과, 이론가와 예술행정가 양성코스인 이론과의 3개과에 95명. 96년 개원, 아직 2학년까지 밖에 없지만 올들어 3명이 국내외 무용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경사가 났다. 실력이 모자라면 뽑지않고 입학해도 강행군의 나날이다. 성적이 B- 이하이면 탈락이다. 익숙해지기까지 처음 석 달은 누구나 힘들어한다. 그래도 견디는 힘은 무엇보다 춤이 좋아서. 이쯤되면 즐거운 지옥이다. 철저한 프로, 그것이 목표다.

무용원이 개원 2년 만에 재학생들로 이뤄진 크누아(KNUA)무용단을 만들어 24, 25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창단공연을 갖는다. KNUA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문표기 머릿글자를 딴 것. 학교의 공식 부설기구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무용전문 고등교육기관(4년제 대학과정)으로서 재학생들이 그동안 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첫 무대여서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하오 2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발레연습실. 창단공연 연습이 시작됐다. 러시아인 초빙교수 마크 에르몰로프의 지도에 따라 워밍업을 위한 1시간 반 동안의 기초자세 연습부터 했다. 15분만에 학생들의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떨어지고 이마와 가슴팍은 물칠을 한 것처럼 됐다. 연습실은 이내 거친 숨소리와 더운 열기로 가득찼다.

1학년 김현주(18)양은 잠시 쉬는 새 아픈 무릎을 만졌다. 『발레하는 사람 치고 몸 안 아파본 사람 있나요.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잘 풀어줘야 돼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연습을 쉬면 몸이 찌뿌둥하고 근질거려요. 이런 말이 있죠. (연습을) 「하루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스승이 알고 사흘 쉬면 관객이 안다」. 휴일에도 학교에 나와 연습하곤 하지요』 무용원은 춤에 몸을 혹사하는 학생들을 보살피기 위한 물리치료사를 두고 있다. 이날도 여러 명이 끙끙 신음을 지르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지난 8월 일본 후쿠오카(복강) 무용콩쿠르에서 시니어부 3위를 차지한 1학년 장운규(20)군은 고1 때 영국에 가서 발레유학을 하다가 병역문제 때문에 다시 들어왔다.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나 조금씩 하는 생각이겠지만. 재미있으니까, 자신이 원한 것이니까 하는 거지요』

토슈즈는 비싸다. 수입품 한켤레에 보통 6만원. 그 비싼 꿈의 신발이 하루 너댓시간 연습에 길어야 2∼3일이면 못쓰게 된다. 연습량이 많으면 하루에 망가지기도 한다. 김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다른 발레전공학생들도 경력이 10∼15년은 된다. 그들이 그동안 사용한 토슈즈가 수천 켤레도 넘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얼마나 많은 땀과 고된 자기훈련의 시간이 거기 담겨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무용원 뿐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 음악원, 연극원, 미술원, 영상원이 전부 참여한다. 무용원 학생들은 교수들이 안무 또는 재구성한 작품을 춤추고 영상, 무대제작, 진행은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이 나눠 맡는다. 공연작은 현대무용 「인사이드 에디션」(안무 미나유), 한국무용 「학이여, 그리움이여」(안무 정승희),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재구성 김혜식) 등 3편이다. (02)264―3159, 3134.<오미환 기자>

◎무용원에 바란다/고등교육위주 탈피 시급/실기·창작도 명확한 구분을

무용원에 대한 기대는 각별하다. 심지어 『무용원만이 우리나라 무용예술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는 무용가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무용원 체제는 아직 「반쪽짜리 예술가 육성제도」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첫째 이유는 고등교육 위주라는 점. 무용은 다른 예술분야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무용원은 대학과정에 해당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제대로 교육을 쌓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재 무용원에도 초등학생과 중학생 23명이 다니고 있는 예비학교가 있지만 정규교육과정은 아니어서 각자 학교를 다니며 과외로 교습받고 있는 실정이다. 무용평론가이자 무용원 강사인 문애령씨는 『외국같으면 이미 무용단에 입단, 활동할 나이에 우리 학생들은 무용원에 입학해 몸에 익은 나쁜 버릇을 교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기과, 창작과, 이론과 등으로 나눠진 학과체제는 매우 이상적이지만 운용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장르로 나눠 테크닉을 가르치고 교수들이 춤추기와 안무를 병행해온 무용계의 오랜 관행에 젖은 탓인지, 무용원 교수조차 실기과와 창작과의 명확한 구분없이 애매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창무예술원 고문 김매자씨는 『무용원이 여타 대학들의 모델을 따르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기존의 교육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신의 방향을 정립, 진정한 예술가를 키워내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정명화씨가 음악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하듯이 외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무용가를 교수진으로 적극 초빙하고 창작교육의 커리큘럼을 보다 다듬어야 한다는 등의 제언도 뒤따른다. 그러나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은 무용원에 대해 단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은 없다. 열려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김희원 기자>

◎인터뷰/김혜식 원장/철저하게 실기중심 교육/한국적 교육모델 개발 중요

『미국 줄리어드무용원이 유명해진 것은 생긴 지 25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예술가를 키워내는 일은 그만큼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 무용원은 10년은 지나야 할 겁니다. 개원 2년 밖에 안됐지만 학생들의 실력을 선보이고 싶어서 무용단을 창단했습니다』

창단공연을 앞둔 무용원 김혜식(55) 원장은 『처음이라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요청했다. 김원장은 66년 영국 로열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난 한국인 최초의 발레 유학생이었다. 스위스 취리히오페라 발레단 차석, 캐나다 르그랑발레단 수석무용수,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시빅발레단의 객원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약했고 귀국 후 국립발레단장을 지냈다.

졸업생도 안나왔는데 무용단이라니 너무 성급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원장은 『무대경험은 이를수록 좋기 때문에 학생이 재학시절부터 공연에 참가하도록 무용단을 만들었다』고 답했다. 외국서는 대학 들어갈 나이에 상당수가 현역으로 뛴다. 대학 마치고 직업무용단에 들어가는 우리나라식 프로입문은 사실 너무 늦다. 무용원의 철저한 실기중심 커리큘럼은 실기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압도적인 일반대학 무용과와 크게 다르다. 조기교육이 중요한 예술분야 특성에 따라 대학입학 나이가 안된 어린 학생이 배우는 예비학교 과정도 있는데 현재 23명이 다니고 있다. 무용원의 현재 어려움은 연습실이 부족한 것. 남산교사의 연습실이 비좁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연습실을 빌려 쓰고 있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교사가 98년 12월 완공될 때까지는 남산과 서초동을 오가야 한다.

『한국 현실에 맞는 무용교육의 모델을 개발하는 게 중요합니다. 무용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러시아발레가 지금은 서방보다 20년 이상 뒤처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무용원의 과제입니다』<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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