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두달여 앞두고 신한국당이 당의 존폐를 가늠하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이회창 총재가 대선의 공정관리를 위해 명예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당을 떠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거센 소용돌이에 빠진 것이다. 이총재의 탈당요구와 집권당으로서의 기득권 포기 등 홀로 서기 선언으로 청와대와 신한국당,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하루 아침에 냉랭한 남남관계로 돌변해 가뜩이나 경기침체와 정국불안으로 어수선해 하던 국민들을 더욱 혼란케 했다고 볼 수 있다.이총재가 김대통령에게 당적이탈 요구라는 직격탄을 던진 직접적인 발단은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유보가 청와대의 작용 때문이라는 심증 때문이었다. 후보가 된 후 이총재측은 청와대의 태도에 불신을 지녀왔다. 두 전직대통령 사면구상, 보수대연합, 김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 등을 낼 때마다 모조리 제동을 건 것도 그렇고 특히 이인제 전 지사의 출마를 만류하지 않은데 대해 의구심을 가져 온 터에 이번 비자금 수사가 하루만에 유보로 변경된 것을 이중플레이로 단정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이 검찰에의 입김을 사실 무근이라면서 탈당 요구를 거부하고 당내 비주류측 역시 당의 혼란은 이총재의 아들병역 문제, 리더십부재, 그에 따른 국민 지지율 저하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누구더러 나가라는 거냐며 적반하장으로 단정하여 이래저래 당의 내분과 후보교체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날 이총재가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은 물론 92년 대선자금과 자신의 경선자금에 대한 조사의 당위성을 강조한 후 3김체제를 부패정치 구조로 규정, 이를 제거하기 위한 성전을 선언한 것은 김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치자금법에 의한 국고보조, 당비, 후원금 외에 어떤 자금도 받지 않고 선거를 치를 것이며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법정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은 타후보에게는 물론 선거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하튼 92년 대선자금문제로 중립을 선언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탈당의 경우와 달리 신한국당은 전현당권자인 명예총재와 총재가 협력적인 동지가 아닌 사실상 등을 돌린 적대관계를 이루는 묘한 상황을 맞게 됐다. 이제 당은 주류·비주류가 갈등끝에 분당을 하든지 이총재가 밖으로는 반DJP연합전선 구축을, 안으로는 비주류 설득으로 평화를 이룩하고 김대통령과도 화해 여부를 모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국민이 한정당의 「집안」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집권당, 다수당의 집안싸움이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안정과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총재측은 냉정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최고통치권자로서 흔들리는 정치와 곤두박질하는 경제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임기때까지 적극적인 국정운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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