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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어머니들/이진희(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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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어머니들/이진희(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7.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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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엔 요즘 자녀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낮 길이가 크게 짧아지고 무거운 회색하늘이 낮게 드리우기 시작하는 10월이 깊어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등교시간은 8시이건만 거리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자녀를 혼자 보내기가 걱정스런 탓이다.보다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러시아의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여성들은 서구적인 외모를 가졌지만 심성은 동양적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자식사랑도 유별난 구석이 많다.

동포 2세 레나 김(45) 아주머니. 여름내내 다차(전원주택)에서 야채를 키워 모스크바에 내다 팔았다. 휴가라고 부르기에는 고된 일과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묻자 더 늙기전에 아들이 결혼해 살 집도 마련해야 하고 아직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시집보낼 돈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지만 정작 그는 러시아의 평균적인 어머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가정에서 애기를 돌보는 아리야(69) 할머니. 그에게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있다. 대학졸업과 함께 사회과학연구소에 취직해 이웃의 부러움을 산 인텔리였다. 그러나 구소련 붕괴의 와중에서 아내와 헤어져 현재는 어머니에게 얹혀 사는 처지다. 그 자식에게 사업자금을 만들어 주는 게 할머니의 꿈이다. 적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자식을 돌봐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할머니는 말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얼마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준 뒤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창문을 두들겼다. 옆에 있는 초등학생 두명을 학교에 태워다 주었으면 하는게 그의 부탁이었다.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자기 자식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어디서나 어머니의 사랑은 한량없지만 유독 러시아는 우리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신성적 산정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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