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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희생과 봉사의 길”/제9회 서울시민대상 영광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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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희생과 봉사의 길”/제9회 서울시민대상 영광의 얼굴들

입력
1997.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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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전몰군경 미망인회 이상흥씨/“어려움 돕는 것이 먼저 간 남편의 뜻”『47년이 흘렀는데도 눈물이 마르질 않네요. 기쁜 일이 생길수록 먼저 간 남편 생각이 들어서…』

대상 수상소식을 접한 이상흥(70·여·서울 동대문구 장안3동 336 시영아파트 30동 203호)씨는 이제 손자뻘로 보이는 젊은 남편의 영정을 부여안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신혼때인 51년 10월 강원 양구지구 「피의 능선」전투에서 남편 최종구(당시 24세)대위를 잃은 이씨는 모진 시련과 가난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해왔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생후 4개월된 딸과 단둘이 남게 된 이씨에겐 가시밭길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인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와 행상과 청소부 날품팔이 등 먹고 살기 위해 갖은 억척을 부렸지만 여자 혼자의 힘만으로는 끼니를 때우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아비없는 자식을 키우는 여자」라며 주위에서 눈을 흘길 때마다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수치심을 참아내야 했고 사는 것 자체가 힘에 겨워 세차례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당시의 고생 때문에 얻은 만성당뇨병과 심장병이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의지할 곳없는 이씨가 실의를 딛고 남을 돕는 삶을 시작한 것은 81년초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모임인 「전몰군경 미망인회」에 우연히 참여하면서부터. 이씨는 전몰군경미망인회 동대문지구지회에 가입한 뒤 총무와 지회장직을 맡으면서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들의 자립을 돕는 일만이 「남편의 숭고한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웃돕기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의 유원지를 다니며 폐품수집에 나섰다. 휴일이면 회원들을 다독거려 도봉산과 정릉 등에서 빈병과 깡통을 수집, 고물상에 팔았고 그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청량리도매시장에서 치약이나 목욕타월 칫솔 등을 떼다가 판매한 수익금으로 음식을 장만해 전국의 양로원과 고아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8평 남짓한 허름한 시민아파트를 전세내 살고 있는 이씨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구약성서 이사야서 41장10절의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며 위안을 받고 있는 이씨는 오늘도 그늘진 곳에 쓰러진 이들의 손을 잡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변형섭 기자>

□본상

◎시각장애인 녹음도서 제작 황임숙씨/“그들의 아픔 생각하면 피곤함 모르죠”

『시각장애인을 생각하면 매일 변화하는 하늘과 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라요. 놀러가자는 얘기가 사치스럽게 들려요』

89년부터 서울 강동구 고덕동 시각장애인복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녹음도서제작에 전념하고 있는 황임숙(60·여·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 6동 1106호)씨는 장애인이 아픔을 생각하면 하루 4시간의 작업이 피곤하지않다. 8년전 우연히 녹음도서 제작에 참여한 뒤 황씨가 지금까지 녹음한 테이프는 모두 3,200여개로 복지회에서 녹음한 3만3,000여개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6만명의 시각장애인중 녹음도서를 한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황씨를 기억하고 이중 많은 사람들이 황씨의 팬이다. 한 장애인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침을 놓아주기도 했고 매주 10여명의 장애인들이 팬래터를 보내온다.

『단행본을 점자책으로 만들면 10여권으로 늘어나 갖고 다니기 어렵지만 녹음도서로는 60분짜리 테이프 하나에 담을 수 있다』는 황씨는 『갈수록 녹음량이 늘어나지만 자원봉사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음도서를 제작하는 데는 체력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래서 황씨는 하루 1시간씩 수영으로 몸을 다진다. 또 조금만 피곤해도 목소리가 갈라지기 때문에 녹음과 가사 및 운동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활동을 자제한다.

기억에 남는 녹음도서로 소설 「동의보감」과 번역서 「매혹된 영혼」을 꼽는 황씨는 『베스트셀러로 오르기 두달쯤 전에 소설 「아버지」를 장애인들에 들려준 일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의 마지막 바램은 개인용 녹음도서를 만드는 일이다. 장애인들이 개인적으로 녹음도서를 부탁하면 그들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 『건강한 눈을 갖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항상 기쁜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그는 실제보다 20세는 젊어 보인다.<이범구 기자>

◎도림동 새마을 부녀회 곽동순씨/시어머니 병수발 20년… ‘1일 엄마’까지

본상을 수상한 곽동순(43·주부·서울 영등포구 도림2동 144의114)씨의 삶은 가정의 행복이 사회의 화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곽씨는 중풍 고혈압 관절염 결석증 등으로 20년째 병석에 누워 4년전부터는 아예 거동조차 못하는 시어머니(74)의 대소변을 하루 10차례이상 받아내면서도 군소리 한번 내지 않는 효부로 소문나 있다.

시어머니가 병석에 오래 누워 있어 혹시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매일 목욕을 시켜주는 것은 물론, 미장원에 가는 불편을 덜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머리를 다듬어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봉양을 위해 결혼이후 24년동안 마음놓고 외출한번 못하며 살아왔다.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남편 김광천(49)씨의 봉급을 관리하는 시아버지한테서 일일이 생활비를 타서 쓰고 있지만 불평 한마디 없다.

곽씨는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는 것을 보고 대학에 다니는 두아들이 부모를 더 존경한다』며 『확실한 가정의 위계질서가 행복을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효행이 시아버지를 통해 노인정에 알려지면서 7년전부터 새마을부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사회봉사활동에도 나섰다. 경기 광주군 「한사랑마을」, 서울 남부장애자복지회관, 서울 「교남 사랑의 집」 「소쩍새마을」 등의 정신장애자나 지체부자유자들을 방문,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면서 「1일엄마」역할도 해왔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을 때는 속옷 화장지 수건 쌀 등 생활필수품을 정성껏 준비해 전달한다. 또 매년 새마을부녀회 주최로 열리는 도림동 노인위안잔치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 노인들의 며느리역할도 해왔다. 『평범한 주부와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소문이 나 큰 상을 받게 됐다』는 곽씨는 『가정의 화목과 이웃사랑을 위해 보다 노력하라는 의미인 것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황양준 기자>

□장려상

◎김동래씨/26년째 합정로터리 교통지도

개인택시 운전기사인 김동래(53·서울 마포구 합정동 388의 26)씨는 봉사와 사랑을 몰고 다닌다.

김씨는 84년 11월부터 도로를 누비면서 교통사고위험이 높은 웅덩이나 파손된 맨홀을 발견하면 택시 트렁크에서 스스로 제작한 삼각형모양의 위험표지판을 꺼내 놓아 길잡이역할을 해오고 있다.

운전도중 먼지가 묻어 잘 보이지 않거나 넘어진 교통표지판을 보면 기록해뒀다가 비번일에 시내를 돌며 걸레로 닦고 바로세우는 일을 10년 넘게 해왔다. 특히 비번일 상오 7시30분부터 9시까지 1시간30분동안 마포구 합정로터리에서 경찰을 도와 교통지도를 해온 지도 택시핸들을 잡기 시작한 71년부터 지금까지 26년이나 된다.

김씨의 봉사는 이웃사랑으로 이어진다. 84년 발족한 새마을지도자 교통봉사대의 회원으로 일일찻집을 운영하거나 껌을 판매한 수익금을 모아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다. 교통상황을 알리는 KBS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통신원들과 모심기 벼베기 등 농촌일손돕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김씨는 『하루종일 거리에서 지내다보니 도로의 위험한 부분들이 눈에 띄어 안전운행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수상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말했다.<임종명 기자>

◎이완수씨/장애인 지위향상 30년간 헌신

『장애인은 능력의 장애자가 아닙니다』

이완수(58·동양화가·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씨는 장애를 「성공」으로 승화시켜 「장애인의 대부」로 불린다.

2세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다리를 쓰지 못하는 이씨는 지난 30여년동안 「장애」란 말이 무색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의 「장애인 사랑」은 65년 김용준 헌법재판소장 등 6명과 함께 결성한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가 시발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은 더이상 주변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졌고, 고아원방문 불우이웃돕기 교통정리 등 일반인과 다름없는 활발한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선진국 단체와의 교류를 성사시키는 등 활약도 돋보였다. 이씨는 미국 일본 등의 장애인복지시설을 둘러보고 국내에도 비슷한 장애인시설을 도입했다. 그는 서울대병원과 김포공항에 장애인전용주차장을 설치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장애인탁구협회 부회장으로 국전 입선경력의 동양화가이기도 한 이씨는 『정부의 장애인정책을 점수로 매기라면 100점만점에 50점』이라며 『사회의 인식전환이 장애인복지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김진각 기자>

◎심사소감/최근덕 성균관장/‘남이 아닌 우리’ 온몸 실천한 모범시민들

가장 바람직한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두말 할 것 없이 밝아야 하고 건전해야 한다. 가장 모범적인 시민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우선 사랑을 베풀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며 민주시민정신 구현에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큰 전제를 세워 놓고 심사에 임했다. 추천된 사람은 모두 48명. 경력이나 공적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최종으로 5명을 뽑은 것은 심사위원 여러분의 면밀한 끈기와 실무진의 꼼꼼한 실사 덕분이었다. 5명중에서 대상 한분을 뽑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난상숙의를 거듭한 결과 이상흥 여사로 낙점됐다. 이여사는 20대초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조국에 바친 전쟁미망인으로서 50여년동안 한결같이 남을 위해 살아온 분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역사의 굴곡 속에서 자기자신을 잊은 채 이웃의 가난과 고통에 관심을 쏟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상이 결정되자 본상 두분은 쉽게 선정됐다. 황임숙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삶을 내던진 분이다. 우리주변에 이런 분이 있어 한결 밝음이 더해지는 것으로 생각됐다. 곽동순씨는 부모공경과 사회봉사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높이 평가됐다.

장려상은 이완수 김동래씨에게 돌아갔다. 이완수씨는 자신이 1급장애인으로서 장애인재활훈련에 헌신하고 있으며 김동래씨는 모범택시운전기사로 사회봉사활동에 열성적인 분이다. 금년도에는 대상과 본상을 모두 여성이 휩쓸었다. 수상을 계기로 한층 정진해주기를 빈다.

▷심사위원 명단◁

▲최근덕(64·성균관장) ▲김영상(80·향토사학회장) ▲강신재(73·예술원회원) ▲강영숙(65·사단법인 예지원 원장) ▲엄규백(65·양정고 교장) ▲권오호(58·서울시 내무국장) ▲김재계(56·소년한국일보 사장) ▲정달영(58·한국일보 심의실장) ▲박정삼(55·한국일보 비서실 홍보팀장) ▲고영복(69·서울대 명예교수) ▲허영환(60·성신여대 박물관장) ▲안두순(51·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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