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무너질 기업이 무너진다/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장(특별기고)
알림

무너질 기업이 무너진다/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장(특별기고)

입력
1997.10.22 00:00
0 0

◎백화점식 사업확장 단기차입자금 의존/‘시장의 응징’ 기다려 비교우위 업종선택/‘한우물’로 승부해야금년들어 한보 삼미 대농 진로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가 하면 기아가 벼랑끝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다시 쌍방울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창업 14년만에 매출 1조원의 신화를 만들어낸 전자부문의 종합부품업체인 태일정밀이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간 것은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기업들은 왜 붕괴되고 있으며, 그 붕괴의 공통원인은 무엇인가. 제1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기업을 기반으로 하여 관련된 시장을 깊이 파들어가는 시장심경형경영을 하지 않고 백화점식으로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하는 비관련다각화의 방향으로 질주했다는 점이다. 술장사가 술장사에 충실했다면, 옷장사가 옷장사에만 전념했다면, 벤처기업이 혁신의 심경에 집중했다면 그들은 결코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심사업주변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전업경영 내지는 관련다각화경영이 현대경영의 주류이다. 무리한 복합기업경영은 화를 자초할 위험이 매우 높다.

1981년 4월 제네럴 일렉트릭(GE)사의 최연소 회장으로 취임하여 오늘날 GE를 세계의 초일류기업으로 끌어올린 세기의 탤런트 잭 웰치가 회장직을 걸고 최초로 한 일은 GE의 사업영역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넘버원이거나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사업들만 끼리끼리 묶어서 사업영역을 3개의 원속에 그려 넣었다. 첫번째 원은 GE의 핵심사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두번째 원은 하이테크놀로지사업, 그리고 세번째 원은 서비스 사업이었다.

그는 이 사업들에 대해서만 자원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가차없이 폐쇄하거나 팔아 치웠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유행시킨 리스트럭처링이라는 새로운 전략의 요체이다. 그의 리스트럭처링 목표는 「개선」과 「폐쇄」와 「매각」을 통해 사업영역의 안전지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구태여 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미 싸우고 있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길 수 없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최근 붕괴되고 있는 기업들의 두번째 공통점은 차입금의존도가 너무 높을 뿐 아니라 단기차입금으로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가혹하게 이야기 하면 그들은 과다한 차입금으로(그것도 단기차입금으로) 「구색 갖추기 재벌놀이」를 하다가 내려 앉았다. 과다한 차입금에 의존하는 경영패턴은 한국재벌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96년말 기준으로 본 30대 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약 450%로서 자기자본 비율이 18%대이다. 지금까지 도괴되거나 침강하는 기업들의 자기자본비율은 3∼10%대였고 그중에는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상태인 기업도 있었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그룹이 먼저 쓰러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입금에 의존하면서 기업의 외형과 자산을 불려나가는 경영패턴을 「대차대조표식 경영」이라 한다. 반면에 사업의 높은 수익성과 양호한 현금의 흐름을 중시하는 경영패턴을 「손익계산서식 경영」이라고 한다. 일본기업들이 대체로 대차대조표식 경영을 하였다면 미국기업들은 손익계산서식 경영의 황금률을 지켰다. 많은 일본기업들이 90년대의 거품붕괴 과정에서 엄청난 손실을 경험하였거나 도산한 것은 그들이 고도성장기에나 통했던 대차대조표식 경영타성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통파 경영패턴인 손익계산서식 경영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장기전에서 일본기업을 누르고 이겼다. 경영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언제나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사업선택의 기본적인 지표로 삼아야 한다.

한국의 선발 재벌들도 고도성장기에 무제한 차입에 의존하는 「대차대조표식 경영」을 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망한 사람도 있지만 개발인플레 덕분에 주로 부동산에 빼돌렸던 엄청난 개인재산을 향유하고 있는 기업인도 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살아 남는다」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현재 차입의존형의 대차대조표식 경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현명한 자는 남의 실패에서 배운다. 평균인은 자신의 실패에서 배운다. 우둔한 자는 자신의 실패에서도 배우지 못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장의 응징은 한국기업에게 값비싼 실패의 교훈을 주고 있다. 그 교훈은 언제나 사업의 수익성과 현금의 흐름을 중시하면서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프라하라드 핵심역량 경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