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도발적 영상 뒤죽박죽 줄거리 ‘스크린 쿠데타’/뮤직TV의 현란·광기요소 동원/사운드트랙도 클래식 아닌 첨단 테크노음악90년대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동원되는 수사는 「MTV적」이라는 말이다.신세대에게는 가장 친근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아주 낯설고 불편한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펄프픽션」 「저수지의 개들」 「트레인스포팅」 「로미오와 줄리엣」 「더록」 「세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같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여러 장르의 영화를 아우르는 영화적 형용사가 됐다.
MTV는 물론 음악에서 출발했다. 81년 미국의 한 케이블 방송으로 MTV가 출발했을 때만 해도 이는 영화의 다양한 장르에서 형식을 빌려온 아류 미디어였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만을 24시간 틀어대는 독특한 틀 속에서 MTV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하나둘씩 만들어 갔다.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 이들은 영화보다도 훨씬 찰나적인 이미지와 스펙터클에 매달렸다. 표현주의 영화와 호러무비, 필름느와르 등 영화에서 차용된 MTV의 방식은 낱낱이 쪼개져 새 조합을 이루었다.
10여년이 지나 MTV가 전세계에서 1억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하며 포스트모더니즘시대를 지배하는 문화적 표상이 됐을 때, 영화와 MTV의 주종관계는 역전된다. 영화는 스타일과 정신 모두 MTV적인 기법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특히 60∼70년대에 태어나 70∼80년대 TV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세대가 영화의 중심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흐름은 더욱 뚜렷해진다.
500∼600개의 쇼트로 이루어지던 한편의 영화가 1,000여개 이상의 쇼트로 늘어난 영상의 속도감은 대표적인 MTV적 방식. 액션영화 「더록」의 도입부는 길면 2∼3초, 짧으면 0.5초 정도의 커트가 현란하게 교차된다. 환상적 장면 연출을 위해 광각렌즈나 극단적 조명, 옵티컬 프린트 등이 MTV 세대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기법이 됐다. 클래식하던 사운드트랙마저 MTV의 언어인 팝송으로 바뀌었다. 16세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조리는 화면에 첨단 테크노음악이 흐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이러니는 MTV 세대만이 느끼는 쾌감이다.
그러나 MTV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영화의 기본틀을 뒤흔든 것이다. 고전적 이야기구조는 파괴되고, 「저수지의 개들」처럼 영화는 DJ가 제 마음대로 들려주는 음악과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뒤죽박죽 섞어 놓는다.
청년문화를 빨아들였던 MTV의 기본 전략처럼 MTV식 영화는 젊은이의 알 수 없는 광기와 폭력으로 가득차게 된다. 이 세대의 감성은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심각한 의식이라기 보다는 유희적인 사유로 소화해 냄으로써, 이미지로 느끼고 이미지로 사고하는 새로운 영화 독법의 관객들과 교감하는 것이다.<이윤정 기자>이윤정>
◎MTV출신 감독/데이빗 핀처95년 ‘세븐’통해 비주얼 극대화/마이클 베이‘나쁜 녀석들’ 등 코믹액션 주도
MTV에서 뮤직 비디오를 찍던 감독들은 8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의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다. 할리우드는 새로운 기법과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상업 영화의 새 거장이 되길 바랬다. 그러나 대부분이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븐」의 데이빗 핀처와 「더록」의 마이클 베이 두 사람의 활약은 돋보인다.
8살때 「스타워즈」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데이빗 핀처는 18살에 조지 루카스의 ILM에서 특수효과 수업을 받는다. CF 감독을 거쳐 89년부터 폴라 압둘, 마돈나, 마이클 잭슨, 에어로 스미스의 뮤직 비디오로 유명해진 그는 92년 드디어 할리우드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에이리언 3」로 통과의례를 치른 뒤 95년 발표한 「세븐」은 비주얼 감각을 극대화한 MTV세대가 만들 수 있는 독특한 느와르물이었다.
중세의 7가지 대죄를 모티브로 연쇄살인극을 그린 이 영화는 지나치게 끔찍한 장면과 공허한 메시지로 보고 난 뒤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 영화에도 없었던 실험적인 조명과 촬영, 인더스트리얼 뮤직의 사운드트랙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MTV 시청자들이 뽑은 MTV 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데이빗 핀처가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지향하는 데 반해 , 「더록」의 마이클 베이는 철저한 오락영화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나이키, 코카콜라광고와 티나 터너 등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던 그는 랩송의 이미지로 대사를 뇌까리고 리듬에 맞춰 총을 쏘는 듯한 코믹액션 「나쁜 녀석들」을 히트시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더록」을 히트시킨다.
장르는 다르지만 한편의 긴 뮤직 비디오같은 이들의 영화는 시각적 스타일과 음악 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과시한다. 그러나 감각의 과잉과 내면화하지 못한 겉포장으로서의 메시지 등 독창성이 결여된 한계 역시 고스란히 노출시킨다.<이윤정 기자>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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