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알릴기회 원천봉쇄 “권언유착” 주장/“기호배정·공탁금제도 불공정” 한목소리『각 언론매체의 토론회, 대담, 토크쇼 등에 출연한 15대 대통령후보는 설사 당선되더라도 불법·부정선거로 당선됐으므로 당연히 당선무효다』
이병호 변호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한 민주국민연합은 최근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같은 항의 서한을 보내 언론기관이 주최하는 토론회가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니 즉각 중단시키라고 요구했다. 더 나아가 토론회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내는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헌법소원까지 냈다. 가처분 신청과 헌법소원은 「이유없다」고 기각됐다. 중앙선관위의 답변도 비슷했다. 『누구를 초청할 것인지는 언론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대답이었다.
이른바 군소후보들이 토론회에 특별히 집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선거출마를 선언하는 단순한 사실조차 대부분의 언론이 외면한다. 조직면에서, 또 대중적 지지도면에서 「메이저 후보들」과 상대가 되지 않는 이들에게 언론기관의 토론회는 자신의 능력과 정견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운 「국민승리 21」의 한 관계자. 『신한국당의 후보경선이 시작될 때만 해도 2% 미만이었던 이인제 후보의 지지도가 신한국당 경선후보 초청 TV토론회 직후 20%대로 단번에 뛰었다. 지지율이 낮아 안된다는 언론기관의 주장이 명백한 이중잣대임을 보여주는 실례다』
이들은 이른바 「권언유착」의 의혹으로부터 중앙선관위 등 정부기관의 편파성, 민주주의의 형평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루 불만을 표한다. 『언론기관에 너무 푸대접을 받아 이제는 항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체념까지 나온다.
이들의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기호 배정을 원내 의석순으로 하는데다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3억원이었던 공탁금도 대폭 인상될 전망이다. 『현행 선거법은 일방적으로 기존 정당에 유리하게 돼 있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제 아무리 뛰어난 새 인물이 나가도 백전백패일 수 밖에 없다. 기득권 지키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모양이다』 이런 볼멘소리는 군소후보 진영에서는 예외없이 흘러 나온다.
그러나 이런 하소연이 특별히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권은 비자금 파문에 휩싸여 이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고 TV 3사도 「원내교섭단체를 가진 정당 후보와 국민들의 상당한 지지(현재는 10% 이상)를 받는 후보」로 돼 있는 토론회 초청 대상 선정 기준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이 기댈 언덕이라고는 국민들의 관심뿐인데 이 또한 여의치 않다. 여야 대권후보들의 흠집내기와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사로잡혀 이들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다.
이 정도 어려움은 이미 예상한 바라며 새롭게 각오를 다져 보지만 막상 맞닥뜨린 법제도와 여론의 벽은 생각보다 더욱 단단하다는 것을 군소후보들은 새삼 느끼며 어렵게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역대 군소후보 성적/대세는 못잡았어도,눈길은 잡았다/7대 진복기·14대 백기완 후보/1%넘어 군소후보중 최고성적/신정일·이병호씨는 재수생
역대 대통령 선거마다 여·야 후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양념」처럼 등장한 「군소후보」. 이들은 독자 출마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8∼12대 체육관 선거때를 제외하고는 매 선거마다 후보군을 형성하며 나름대로 분전해 왔다. 물론 이들의 득표율은 모두 합해도 총 유효득표의 2%를 넘지 못해 대세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득표율 자체가 또다른 관심사로 유권자들 사이에 회자되곤 했다.
대통령 선거의 군소후보를 생각하면 먼저 역대 군소후보 중 최고 득표율을 올린 카이저 수염의 진복기(78)씨가 연상된다. 71년 정의당 후보로 나선 7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김대중후보에 이어 당당 3위에 올랐다. 12만 2,914표를 얻어 1.03%의 득표율을 올렸다. 국민당 박기출(4만3,753표), 자민당 이종윤 후보(1만7,823표) 등이 뒤를 이었다. 진씨는 87년과 92년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87년에는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퇴했고, 92년은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같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중도 포기했다. 88년 목사안수를 받은 뒤 목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독성민당(가칭) 총재 직함을 갖고 있다. 여든을 눈 앞에 둔 진씨는 『사상이 검증되지 않고 철학이 부재한 후보들이 난립하는 지금의 정치 풍토로는 누가 되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며 『여건만 된다면 출마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싶다』고 단서를 붙인 재도전의 뜻을 내비쳤다.
백기완(65)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재야세력의 지지를 업고 역대 군소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87년 13대때 무소속으로 출마해 줄곧 양김씨의 후보단일화를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중도 사퇴한 뒤 14대에 재도전, 23만8,648표(득표율 1.0%)로 5위에 올랐다. 백소장은 최근 전국노조협의회 고문을 겸임하고 있으며 권영길 민노총 대표의 대선출마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참여의 뜻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성후보로 단골 출마자인 김옥선(63) 전 의원은 14대 대선에서 0.36%의 득표율, 득표수 8만6,292표로 6위에 그쳤다. 이후 95년 지자체선거에서 서울시장후보로도 출마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무당파 국민연합으로 선량의 꿈을 다시 지폈었다. 한때 국민회의 입당설이 나돌기도 하는 등 꾸준히 정계와의 끈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 대선의 군소후보 중엔 재수생도 2명이나 된다. 13대 대선에서 1노3김과 일전을 겨뤘던 신정일씨(4만 6,650표, 득표율 0.2%)가 재기의 꿈을 다지고 있고 14대때 대한정의당 후보로 나와 3만 5,739표(득표율 0.15%)로 7명 중 최하위를 기록한 이병호씨도 민주국민연합을 창당, 출마태세를 갖췄다.<염영남 기자>염영남>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재야후보 이번엔 ‘군소’딱지 떼려나/전국연합·민주노총 등 연합/노동자·학생·20대가 공략층/“지지도 3%에 달한다” 기세
대통령 선거에서 재야 후보가 「군소」 딱지를 뗄 수 있을까?
14대 대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백기완씨에 이어 오는 15대 12·18 선거에는 재야시민단체가 추대한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92년 대선 당시 최대 재야조직이던 전국연합이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범민주 단일후보」로 결정한 데 불복하고 독자적으로 출마했던 백후보는 유효표의 1.0%에 달하는 23만 8,000여표를 얻었다. 내부적으로는 『예상보다 득표율이 낮아 실망스러웠다』는 평이었지만, 제도권에서는 「뜻밖의 선전」으로 받아들여졌던 결과였다.
권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운 「국민승리 21」은 『권위원장은 전국연합 등 대표적인 재야조직이 함께 추대한 범민주진영의 독자 후보인 만큼 운동권 일부 분파에 의존했던 백후보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승리 21」은 전국연합, 민주노총 등 전국적인 조직망과 오랜 활동사를 가진 재야세력의 연합체.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 기반이 훨씬 탄탄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적으로 운동권 이미지가 강한 「민중후보」의 명칭 대신 「국민후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권위원장은 최근 일부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지지도 조사에서 심심치않게 거명되고 있다. 10월초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는 인천 지역에서 4.2%의 지지율로 자민련 김종필 총재(2.8%)를 제쳤다. 권위원장의 출신지이자 노동계 세력이 비교적 강한 부산·경남 일부 지역에서도 지지율이 1%대로 나타났다. 몇몇 중앙일간지의 조사로는 평균 1% 남짓이나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승리 21」측은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명시해서 실시한 자체 지지도 조사에서는 지지도가 3%에 달했다』며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면 지지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권위원장 선거대책본부측은 10%대 득표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위원장의 지지계층은 「노동자, 학생, 20대」로 좁은 편. 지역에 따라서는 지지율이 0%가 나오는 등 「새 얼굴」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야 후보가 제도권 정치판에 본격적인 진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다른 군소후보들에 비해 차별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권위원장이 이번 대선에서 어느 정도 표몰이에 성공할 지는 「군소후보」라는 차원을 떠나 정치적 관심사이기도 하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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