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에서 시동에서 은비령에서 가슴에 와닿는 인간관계 그물망/한편으론 엮고 한편으론 풀며 가물가물한 기억의 심층 더듬어이순원(40)씨의 새 소설집 「말을 찾아서」(문이당 발행)에는 감동이 있다. 「감동적」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만한 정신의 감응을 주는 일이 하도 드문 세상이기에 그의 이번소설집이 일궈낸 감동은 더욱 값지다.
작품집에 실린 6편의 소설에는 각각의 배경이 되는 특정한 지명이 있다. 봉평, 시동, 강릉, 은비령, 대관령과 경포호, 위촌. 이들은 작가의 고향이 있는 강원도의 지역이다. 당초 존재하던 지명도 있고 작가가 붙인 이름도 있다. 어쨌거나 이 지역들을 따라가며 읽는 독서의 경험은 그 지명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도 그대로 마음 속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영혼의 지도를 그려가는 여행길이다. 이 지역들을 배경으로 한 각각의 소설에서 작가는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남과 여, 친구, 조손이라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하나하나 엮어보이고 또 풀어보인다.
표제작 「말을 찾아서」는 노새처럼 자식을 두지 못해 조카를 양아들로 들이려 하는 말몰이꾼 당숙과, 『부모가 있는데 내가 왜』 하는 당연한 갈등 끝에 그를 「아부제」(아버지이기도 하고 아제이기도 한)로 받아들이는 열세살 조카 소년의 화해를 그린 소설이다. 소년이 봉평 산판으로 떠난 당숙을 혼자 찾아가 「아부제」라 부르며 함께 노새를 타고 고개 넘어 돌아오는 길, 구구한 묘사 없이 둘의 대화로 이루어진 마지막 장면은 눈물겹다. 「니가 날 데리러 완?」 「야, 아부제」 「니가 날 데리러 여게까지 완?」 「야, 아부제」 「니가… 니가… 날 애비라구 데리러 완?」 「야, 아부제」. 작가는 당숙이 기르던 노새 「은별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태어나기로도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온갖 핍박 속에 오직 무거운 짐과 먼 길을 걷기 위해 생식력도 없는 큰 자지만 달고 나온 노새였고 이름은 은별이였다』 은별이의 슬픈 생애는 이제 장성해 작가가 된 소년의 눈에는 「아부제」, 곧 당숙의 생애이자 자신의 생애이며, 이 땅에 살다 간 모든 아버지들의 생애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
「말을 찾아서」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연상시킨다면 「시동에서」는 자연스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봉평에서 시동에서, 또 은비령에서 소설 속의 삽화 하나하나를 마치 읽는 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파도가 절벽 아래 와 부딪치는 게 아니라 그대로 가슴에 와 부딪치는」것처럼 만들어냈다. 장인의 솜씨다. 갓 마흔고개를 넘은 이씨는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의 사회비판을 거쳐 「수색, 그 물빛 무늬」의 가족사적 토로를 지나, 「미혼에게 바친다」 등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공유했었지만 이제는 가물가물해가는 기억의 심층을 헤집어왔다. 「말을 찾아서」는 그 작업의 한 빛나는 매듭이다. 『코끝 찡해지는 감동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는 게 그의 말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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