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군인귀족·농민 세계층이 보완·유지하는 상상의 중세사회 재구성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서양중세사 연구의 최고봉인 조르주 뒤비(지난해 77세로 타계)의 역저 「세 위계:봉건제의 상상세계」가 우리말로 나왔다.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에서 원작이 나온 것이 약 20년전인 78년. 10년만 일찍 번역됐어도 역사 대중화의 올바른 길을 우리 학계와 출판계에 제시하는데 큰 도움이 됐을 명저이다.
뒤비는 이 책에서 프랑스 북부라는 좁은 지역을 무대로 1020∼1220년 2세기에 걸쳐 펼쳐지는 이데올로기의 방대한 파노라마를 때로는 대하장강처럼, 때로는 세밀화처럼 그려낸다. 이 이데올로기란 『기도하는 자(성직자), 싸우는 자(군인귀족), 일하는 자(농민) 등 3대계층(위계)이 맡은 직분에 따라 서로 보완해가면서 중세사회를 유지한다』는 의식(상상)의 세계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벽돌 하나하나는 당시 사상가와 문필가들의 발언과 저작이다. 그는 이들에게 주연과 조연, 단역을 나눠 맡기면서 견고한 3기능체제의 집을 다시 지어나간다.
결론은 이 이데올로기는 『서기 1000년을 전후해 사회변화와 평등주의적 조류의 위협에 직면한 두 주교의 반동적인 대응으로 모습을 갖춰 태어났고 수도사와 귀족계급의 손에서 그네들의 특권적 지위와 권력행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변형된 뒤, 마침내 13세기초에 군주의 독점물, 군주정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일부이자 중요한 제도(삼부회)로 긴 여생을 보장받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불평등과 서열적 신분제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담론체계가 생성·변형되고 다시 채택되는 역사적 과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뒤비 글쓰기의 특징은 종합과 분석을 쉴새없이 넘나들며 사실과 상상을 수도없이 오가고 관계없는 듯한 사항들의 은밀한 연관관계를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데 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은 중세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 관념세계를 통해 현실세계의 모습을 재구성해내며 둘 사이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총체적으로 포착해내는가 하는 그의 방법론이다. 그 방법론은 그의 문학적 재능에 힘입어 역사를 생생한 해부학적 풍경화로 승화시킨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성백용(35)씨가 상세한 주를 붙여 성실하게 옮겼다. 문학과 지성사 발행, 2만3,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