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부각 불구 압축성은 부족여남은 개의 철제 H빔. 그 사이를 엉성히 막아놓은 양철슬레이트. 목재 경사로. 그 중앙의 물 웅덩이. 내장같은 하수관. 사방에 널린 잡동사니. 지하철, 또는 지하철 근처의 공사장인 듯하다. 그러나 녹슬고 부서진 정도로 보아 공사는 오래 전에 중단되었다. 간간이 지하철의 굉음이 들리지만 무대는 폐허와 정지의 느낌이다.
물론 움직임도 있다. 인간들이다. 그러나 공허하다. 다들 허공에 뜬 채 부유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곳의 상주자들이 있다. 늘 혼잣말을 읊조리며 술에 절어 있는 행려자. 베개를 아기처럼 안고 다니는 미친 여자. 다리를 다친 껌팔이 소년.
여기 외부인들이 침입한다. 목적은 영화촬영이다. 외관상 그 움직임은 아주 활발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진정한 소통은 없다. 감독은 「진실」과 「리얼리티」를 외치지만 아무 생각없이 외치는 구호일 뿐 의미 획득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그 지시를 받는 조감독은 늘 선다형 문제의 답을 찍듯 허둥댄다. 하지만 그 역시 배우들에게는 마치 독재와 선문답식의 모호한 지시가 감독의 징표인 양 철저히 그 흉내를 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류가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엑스트라들이다. 그들은 영화 촬영에 참가하지만 소외된 존재들이다. 무한정 차례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극단 76단이 기국서·박근형 연출로 공연중인 「지피족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고립」과 「소통부재」이다. 무대와 인물들 사이가 괴리되고 인물들은 다시 몇 부류로 갈라지며 그 부류 안에서 개인은 철저히 고립된다. 그리고 그 파편들은 어떻게 조립되든 별 상관이 없다. 마치 남들이 한 얘기를 멋대로 해체 조립하는 두칠(전수환 분)의 얘기나 즉흥적으로 바뀌는 영화의 내용처럼. 이렇게 볼 때 전반적인 주제 부각은 어느정도 성공적이다.
그러나 촬영중인 영화나 엑스트라들의 심심풀이 얘기들은 앞서 두칠의 경우처럼 형식적으로는 주제를 강화해 주지만 극중극으로서 내용은 별 기여를 못한다. 현대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이 되려면 가벼운 재미는 과감히 제거하고 좀더 압축해야 하리라 본다.<연극평론가·가야대 교수>연극평론가·가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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