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이익·국민감정 넘어 세계무대에서 한일협력시대 이끌 역할을 주문한다최근 나는 일본의 지도급 지식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몇차례 연설할 기회를 얻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주문을 한 바 있다.
첫째, 경제대국 일본이 세계를 향하여 문화적으로 공헌할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근대사를 보면 경제대국은 군사대국·문화대국의 길을 걸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이 그 경우이다. 지금 일본은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었다. 과연 경제대국인 일본이 문화대국이 될 수 있겠는가. 일본인 자신은 물론 많은 외국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어느 일본의 정치지도자는 일본을 문화소국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고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은 일본에 경제적·군사적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문화적 기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본은 서양의 기독교와 같은 세계종교가 없고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자국화하는 데는 탁월한 적응력을 발휘해왔으나 세계를 향해서 발신할 만한 보편적 문화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기술을 문화의 한 영역이라고 본다면 일본은 이미 기술대국이 되었으며 그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상품이 세계를 석권하고있는 터다. 이제부터 일본은 동서문화의 가교로서 또 동서문화의 용광로로서의 일본문화속에 보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 그것을 세계에 내놓는 지성적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군사대국이라는 안이한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문화국가 일본을 창출하기 위해 좀더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류앞에 나설 때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둘째, 평균적인 지식인의 동서양에 대한 지식의 수준을 보면 전세계를 둘러봐도 일본지식인과 한국지식인은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초·중·고교와 대학·대학원에서 쉴 새 없이 서양을 공부하고 있다. 서양에는 소수의 탁월한 동양 전문가가 있으나 평균적인 서구 지식인의 동양에 대한 이해는 한심한 정도이다. 서양지식인의 동양과 아시아에 대한 무시는 뿌리가 깊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대의 평균적인 서구지성들의 동양에 대한 무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무시는 1차적으로 무지에서 출발한다. 그에 비하면 동양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 특히 일본과 한국지식인이 서양에 대해 지닌 지식은 우리가 스스로 냉소하고 있는 수준에 비해 엄청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한국의 평균적 지식인의 동서양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것이 일본과 한국의 학문적 수준이 높다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이 세계적 수준에서의 지식인 사회에서 할 역할을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고 특히 일본 지식인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서구의 근대가 그 효용과 함께 한계에 부닥쳐 있고 서구 지식인 스스로가 그들이 만든 근대를 뛰어넘는 사상 문화를 갈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동양으로부터 대안적 정신체계가 없는지 넘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현대의 사상상황하에서 동서양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제3의 정신 사상 문화에 대한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지적 잠재력을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아시아적 인권론」을 제기하고 있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한국과 일본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서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거부해본 적이 없다. 이는 아시아에서도 두 나라가 민주주의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정의 정도가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 한일 관계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주문이다. 지금 한일간에는 정부수준의 국가이익과 민간수준의 국민감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이익차원에서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타협을 해야하고 국민감정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으로 남아있다. 이때 양국의 지식인은 사려와 관용을 바탕으로 현안해결에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과거문제는 사실에 승복하고 현재는 세계무대에서 그리고 동북아 안보문제에서 상호협력하며 미래를 향해서는 필요한 범위내에서 강력한 연대를 통하여 한반도 평화, 동북아 질서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식인은 국가이익의 냉혹함과 국민감정의 집요함을 숙지하면서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혜안과 전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한일 지식인의 교류와 협력과, 연대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도쿄에서>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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