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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이준희 사회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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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이준희 사회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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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 섬뜩한 이 이름은 이제 국민적 애칭이 됐다. 차범근 감독과 최용수 선수처럼 이들도 온통 짜증나는 일뿐인 요즘에 그나마 국민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축구장 스탠드에서, 도심 전광판 앞에서, 혹은 카페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해대던 붉은 상의의 젊은이들이다.원래 「붉은 악마」는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때 「4강신화」를 일군 한국팀의 「닉네임」이었다. 당시 무명팀이 돌연 세계축구의 중심무대에 등장, 축구열강들을 차례로 무너뜨리자 세계언론은 경악했다. 붉은 유니폼 차림으로 거침없이 상대진영을 유린하는 모습에 감탄, 외국인들이 붙인 별명이 바로 「붉은 악마」였다.

이번의 「붉은 악마」는 당초 PC통신 축구동우회원 50여명으로 구성된 순수한 젊은이들의 소모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 월드컵예선전에서 국민적인 각광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에게 배당되는 단체관람표를 노려 갑자기 회원이 폭증하는가 하면 마치 식당이름처럼 「원조」를 자처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축구경기때마다 얼굴을 내미는 몇몇 연예인은 언론의 초점에서 밀려난데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며 좌장자리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시달림에 지친데다 순수한 모임의 변질을 우려한 회원들은 결국 「붉은 악마」 이름을 내건 조직적 응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대우즈벡전때도 TV화면은 또다른 「붉은 악마」 응원단을 등장시켜 회원들을 기막히게 했다. 14년전의 그 영광스런 이름을 차용한 것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이같은 일련의 「붉은 악마」소동은 일견 사소한 가십(Gossip)성 사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의 한 상징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굳이 소개해 보았다. 사실 눈앞의 작은 이익과 헛된 이름을 좇는 이들 때문에 본래의 뜻과 순수함이 오염되는 곳이 어디 경기장주변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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