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하 수상하다. 뭔가 불안한 기운이 사회 전반에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바야흐로 옥좌를 향해 진군해 온 대선 주자들의 최후의 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바탕 폭풍은 불어 칠 것인가. 그리고 이 치열한 접전이 끝나고 나면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수상한 오늘의 접전을 보면서 참으로 또 한번 정치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이들은 분명 피를 나눈 어제의 동지였고 민주투사였으나 오늘은 사생결단을 눈 앞에 둔 적이 되었다. 무섭다. 참으로 권력에 대한 집착은 무서운 것이다.용의 눈물이라는 TV드라마에서는 한창 함흥차사에 관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칼을 맞들고 싸우다가 화해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일명 「함흥차사」라고 하기도 하고 또 「조사의의 난」 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이야기가 혼탁한 정국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교훈이 있을 것 같아 그 내용만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역사를 보는데는 작가로서 두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삼는다. 일차적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이고 또 하나는 「연려실기술」이나 「대동야승」같은 제법 신빙성과 사실성이 있는 야사들을 병합하는 것이다.
민심의 동향과 감정을 예리하고 폭넓게 적어놓은 것이 함흥차사 이야기인데 반해 냉정하게 당시의 조사의를 통한 군사적 반란 사실만을 몇가지로 짚어놓은 정부기록 그 자체가 실록인 것이다.
먼저 「함흥차사」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야사를 살펴보자. 조선조 3대 임금 태종은 아버지가 일으킨 조선왕조의 세자자리에서 제외되자 1,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어린 아우들을 죽이고 형들을 내쫓으면서 대망의 용상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많은 피를 흘림으로 인해 아버지 이태조와 철천지 원수가 된다. 그리하여 이태조는 가슴에 한을 안고 천하를 떠돌다가 옥새를 감춘 채 함흥으로 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방원에게는 옥새가 필요했다. 그것은 민심과 명분이라는 옥새였다. 이미 천하를 거머쥔 그가 힘으로도 얼마든지 뺏을 수 있었던 옥새련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옥새란 다시 말해 정통성과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폭력과 힘으로써 옥좌를 탈취한 천하의 무뢰배라는 오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스스로 그것을 이겨내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임금의 자리란 힘과 간계로만은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곤룡포가 열 벌이 된 들 그가 진정한 임금이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진정한 옥새, 아버지에게서 인정받고 인준받는, 즉 민심을 얻는 최대의 과제로서의 옥새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피눈물나는 인내력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함흥차사」를 보내는 일이었다.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문안사를 계속해 보냈을 때 민심은 그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했고 급기야 아버지 태조가 군사를 몰아 자식을 치려했을 때는 임금 이방원의 입장을 동정해 주었던 것이다. 조사의를 앞세워 군사를 일으켰던 이태조가 패하여 두 부자가 평양에서 만났을 때의 장면을 이 야사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극적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태종 임금이 태조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이태조는 이때 노기를 발하며 아들 임금에게 백우전(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태종은 미리 준비해 놓은 기둥 뒤에 숨어 화를 면하였다. 태조는 비로소 웃으며 옥새를 내어주고는 말하였다. 「이 모두 하늘이 시키는 것이다. 네가 갖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옥새가 아니냐. 가져 가거라!」』
그런데 이것은 일차적 클라이막스에 불과하다. 이내 옥새를 건네주었음에도 다시 태조는 자리에 좌정하여 아들이 술을 따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매 속에 숨겨논 철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태종 방원은 내관을 통해 잔을 올려 다시 화를 면한다. 결국 태조는 철퇴를 내던지며 다시 말한다. 『하늘의 뜻이다』 이 속에는 엄청난 뜻이 포함되어 있다. 태조는 지난 날의 죄를 용서하고 방원은 이제 진정한 임금으로서의 명분과 인정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 온 나라가 술렁거리고 있다. 이 치열한 접전 끝에 누군가는 분명 옥좌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패자로서의 처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옥좌에 오르고 아니 오른들 무엇이 다를 것인가. 민심이 떠나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인데. 방원이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도 혀를 찼을 것이다. 『이런…. 이보게들 지금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겐가. 뒷 날을 어찌들 감당하려고 그러는가. 당장들 그 진흙구덩이 속에서 빠져 나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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