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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간섭·방임이 학대로 표출/학대의 주요현장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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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간섭·방임이 학대로 표출/학대의 주요현장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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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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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학대 구별 힘든 상황서 어머니 72% “체벌을 한다” 응답/안보이는 정서적 학대도 감안하면 단순히 일부가정의 일만은 아니다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들에게 최후의 안식처이자 피난처이어야 할 가정. 그러나 가정이 거꾸로 아동학대의 주요 현장이 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잘못했을 때 체벌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72%의 어머니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영국 28%, 프랑스 30%, 태국 23%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이는 무엇보다 매질이나 체벌을 학대로 생각하지 않는 일반적 인식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가정내 자녀체벌 실태를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91%가 체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체벌과 학대를 엄격하게 구분짓기는 힘들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다수 가정이 언제든 「학대가정」화할 소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이런 가정내 아동학대는 줄기는커녕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86년 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 조사에 따르면 「심하게 매를 맞아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66.2%였으나 지난해 한국이웃사랑회의 조사에서는 76.3%로 증가했다.

친족의 성적 학대로 인한 어린이들의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성적 학대 관련 상담건수는 총 3,459건. 이중 무려 17%가 친부모, 형제를 비롯한 친인척에 의한 것이었다. 미성년 아동은 피해자중 절반에 달했다.

어떤 부모가 어린이를 학대하는가? 일반의 통념은 정상가정보다는 결손가정, 고학력·고소득 가정보다는 저학력·저소득 가정에서 학대 비율이 더 높으리라는 것이다. 실제, 가장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더욱 빈번하고 심하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아동학대를 자칫 일부 문제가정에 국한된 문제로 오도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서울대학병원 홍강의 소아정신과장은 말한다. 『신체적 학대나 영아 유기 등은 저소득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모의 과잉기대 등이 빚는 정서적 학대 문제는 고소득가정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급격한 가족구조 변화도 주요 원인이다. 맞벌이부부가 늘고, 가족공동체가 자녀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나 그 반대의 방임이 학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부모의 인격적 결함이나 정신장애 등에서 아동학대의 원인을 찾으려는 것도 문제를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동학대는 빈곤 등의 경제적 원인, 경쟁지향적이고 승리제일주의식의 사회적 경향,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가정내 분위기 등 다양한 요인에서 나온다. 아동학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가정과 어른은 없는 셈이다.<황동일 기자>

◎아동인권보호 나선 시민단체들/아동학대예방협회·한국이웃사랑회·아동권리학회… 신고접수·상담 등 앞장

정부당국의 손길이 채 미치지 않는 아동학대 방지 및 인권보호를 위해 여러 시민단체들이 팔을 걷고 있다.

아동학대 추방 시민운동의 맏형 격은 89년 설립한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회장 성민선 가톨릭대 교수). 아동학대에 관심이 있는 학계, 법조계, 의료계, 사회복지기관 종사자 및 주부 등 400여명의 회원에 16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협회는 아동학대의 신고접수 및 문의를 받아 해당 기관에 연결해 준다. 주로 학대아동의 부모나 친지 등이 의뢰를 해오며 한달 평균 100여통의 방문·전화상담이 이뤄진다. 상담문의가 접수되면 부모와 아동을 번갈아 상담하며 일시 보호, 치료기관 인도 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 또 설립 이래 매년 2차례씩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고 있다. 공청회의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발간해 유관기관이나 학계에 무료로 배포해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담소나 사회복지기관 종사자, 일반 주부들이 발표하는 아동학대 사례발표회도 매월 열고 인터넷을 통해 발표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이일하)는 91년 출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3월 경기 성남시에 아동학대 상담센터의 문을 연 뒤 전국 11개 지부에 상담센터를 차례로 개설해 300여명의 자문·신고위원과 상담봉사자가 일하고 있다.

주 1회 4시간씩 상담원이나 기관종사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교육도 실시하고 매월 활동내역을 담은 소식지 발간, 아동학대 홍보용 스티커 제작, PC통신을 통한 아동관련 상담 및 자료제공 등으로 사회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르완다 난민구호사업, 소말리아 지역개발사업을 벌여온 데 이어 케냐와 방글라데시 초등학생 구호사업도 벌이는 등 해외 아동 인권보호에도 발을 넓히고 있다. 95년에는 북한식량지원을 시작해 신의주시 아동에게 급식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5월 창립한 아동권리학회(회장 이재연 숙명여대 교수)는 학계의 교수·연구원들이 모여 아동인권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는 단체. 정기·부정기 세미나를 통해 아동학대의 법적 테두리 및 기준을 규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밖에도 학대아동을 수용하는 민간시설인 일신우리집(소장 이상순), 아동과 청소년의 포괄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청소년 상담소 등이 아동학대를 몰아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염영남 기자>

◎전문가 기고/이배근 유니세프 한국위 조정관/어린이는 덜굳은 시멘트 상처는 자국을 남긴다/잘잘못 토론할줄 아는 부모의 인내가 필요

아동학대는 어제 오늘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왔고 부모의 교육이나 경제적 소득수준의 차이, 동서양에 관계없이 보편화한 사회문제의 하나이다. 88년에 개정 선포된 어린이 헌장은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아동학대 금지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맹목적 순종과 교사에 대한 일방적 존경만을 강요해온 우리의 문화관습적 특성과 급격한 산업화,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체벌을 포함한 신체적 구타가 훈육과 혼돈되어 널리 수용되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의 결과에 대한 부모의 인식부족이나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된 신체적 구타나 정신적 방임은 오늘날 아동학대를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어린이는 굳지 않는 시멘트와 같다. 그 위에 무엇이 떨어지면 반드시 자국을 남긴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며 정신적으로 예민한 성장발달기의 어린이들에게 가해진 부모의 심한 폭언이나 폭력은 어린이들의 자존심과 독립심을 파괴한다. 때로는 일생을 통해서 치유하기 힘든 깊은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물론 자녀들의 행동에 대해 분명한 한계를 가르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지도를 해야 할 부모의 의무가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못했을 경우 가능한 모든 교육적 조치를 취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자녀들과 토론하는 부모들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수단의 하나로 체벌을 포함한 신체적 구타나 심각한 정서적 방임은 어떤 경우에도 배제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동들의 폭력이 학교폭력, 사회폭력으로 연장되며 어린시절 학대를 경험한 아동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아동학대의 세습화를 막고 건강한 미래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동학대의 예방, 치료는 국가와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 아동학대 방지법을 포함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일찍이 민족의 암울한 시기였던 1920년대 초에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아동사랑 운동을 펼쳤던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이 『어린이를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고 외쳤던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깊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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