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을 시집보내는 50대 가장이 혼수를 장만하느라 빚을 지자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 딸만 셋인 그 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운데도 첫딸 시집보낼 때를 생각하며 이번에도 무리를 했던 것이다. 하필 결혼식 전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랴. 혼수가 무엇이기에 빚을 지면서 결혼을 시키고 목숨까지 끊어야 한단 말인가. 잘못된 혼례문화로 인해 한 가정이 풍비박산됐다.이미 보도된대로 우리나라의 연간 혼례비용은 96년 GNP의 6.5%인 25조3,000억원이나 된다. 양가를 합쳐 평균 혼례비용은 미국의 4.8배, 일본의 3.2배인 7,500만원으로 집계됐다. 과시욕과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체면치레, 일생에 한 번뿐이라는 생각이 집안의 기둥뿌리가 빠지는데도 남 부럽지 않은 결혼을 하려 하게 만든다. 여기에 부유층의 지각없는 호화결혼이 모방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과소비로 이루어진 결혼이 더 행복하고 원만한 것도 아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최근 5년간의 연평균 이혼증가율 9.26%는 혼수·의례비용의 연평균 증가율 9.3%와 비례한다. 과다혼수로 이루어진 중매부부의 이혼율이 보통의 중매에 비해 70, 80% 높다는 견해도 있다. 혼수라는 「거래품목」을 둘러싼 갈등으로 별거, 이혼은 물론 폭력에 살인까지 일어나는 세상이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결혼과소비를 고치려면 먼저 결혼당사자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특히 가장이 될 신랑은 부모의 과다혼수요구가 없도록 슬기롭게 처신해야 하며 분에 맞는 예식을 올리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먹이고 기르고 가르친 것도 고마운데 살아가며 살림을 장만할 생각은 없이 혼수비용, 주택마련비용을 부모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다. 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고소득가정의 대졸여성들이 희망하는 혼례비가 전국 평균의 2배였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약혼식, 함들이, 야외사진 촬영, 해외 신혼여행을 꼭 하려고 해 과소비가 가중되고 있다.
결혼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부모가 일정액 이상을 지원하는 경우 중과세하는 방안까지 최근 거론됐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타당성 여부와 과세를 할 경우의 적정선 등에 대해 이론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정부는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저리의 혼례자금 융자, 건전혼례모형 개발, 사회지도층 윤리지침 제정, 지자체의 예식공간 실비제공 등은 서둘러 실시해야 할 일들이다. 규정이 서로 다른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도 정비해야 한다. 아무리 사문화한 법이라지만 주류·음식물 접대나 답례품 증정, 화환·화분 진열 등을 한 쪽은 금지하고 한 쪽은 허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10월은 전통적으로 결혼철. 일요일이자 삼합의 길일이라는 19일에는 특히 전국에서 결혼식 러시가 빚어진다. 결혼당사자들이나 하객들 모두 가정경제와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결혼과소비를 진지하게 반성하는 날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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