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일보사 스카이라운지 「송현클럽」에서 바라보는 북악산 자락은 정말 아름답다. 산봉우리부터 번지기 시작한 단풍의 불길이 어느새 산밑까지 옮겨 붙었다. 청와대주변 산자락은 꽃무늬 수놓인 여인의 치마폭처럼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복궁도 온통 붉고 노란 단풍으로 불탄다. 그 불길은 광화문 거리의 은행나무 잎들을 노랗게 물들이며 도심으로 번지고 있다. 북악산을 넘어 쳐들어온 가을은 청와대와 경복궁을 차례차례 점령하고 마침내 서울시내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청와대 주변을 내려다보다 문득 김영삼 대통령의 가을에 생각이 미친다. 이번 가을은 그가 청와대에서 맞는 마지막 가을이고 그래서 문민정부 5년의 치적을 수확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이 가을에 무엇을 수확할 것인가. 「입금액 기준」으로만 볼 때 김대통령의 치적은 화려하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을 단행했고 군부내의 사조직을 척결했다. 정치개혁입법으로 선거혁명을 이뤘으며 경제정의실현을 위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역사 바로세우기의 이름으로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를 5개월 남긴 지금 김대통령의 치적 통장의 「잔고」는 어떤가. 부패척결을 위한 사정은 표적사정 시비로 빛이 바랬고 군 사조직 척결은 지휘공백이라는 부작용과 또다른 군인맥형성의 시비를 낳았다. 6·27지자제선거때 엄격히 적용됐던 정치개혁입법은 4·11총선에서는 사실상 효력을 상실, 또다시 선거관련법들의 개정이 도마위에 올라있다. 김대통령의 최대치적으로 꼽히는 금융실명제는 김대중씨 비자금정국 소용돌이속에서 예금자 비밀보장원칙이 무너짐으로써 사실상 절명해버린 꼴이다. 그는 목하 진행중인 「정치 난장판」에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김대통령의 「문민 주식회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인수할 당시보다 훨씬 부실화했다는 증거는 많다. 김대통령이 문민정부의 가을에 수확할 게 없다는 것은 그만의 불행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김대통령은 청와대 뜨락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