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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주최 대선후보 특별강연회­97대선과 우리정치의 나아갈 길

입력
1997.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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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엄정처리”“3위의 조작극”/이 총재­김 총재 비자금 연단격돌 ‘아슬아슬’/다른 세 후보는 양비론 견지 경중에는 다소차이□특별강연회 질문자들

김일영 교수

김대희 변호사

김광희 연구위원

남인순 처장

김정씨

비자금 정국이 가파른 고빗길을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한국일보사 주최의 대선후보 초청강연회에서는 비자금을 둘러싼 공방이 불꽃을 튀었다.

특히 이회창 신한국당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직설적인 언사를 아끼지 않으며 백병전에 가까운 공방을 벌였다. 두 후보 사이의 공방은 비자금 정국의 시점, 명분, 내용 등 전방위에 걸쳐 난타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우선 김대중 총재는 강연 및 질문답변을 통해 신한국당측의 폭로로 시작된 비자금 정국을 「판을 깨는 정치, 재를 뿌리는 정치」로 규정한 뒤 『선거가 실종되는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톤을 높였다. 김총재는 이어 여지껏 반대해온 『여당이 지금에 와서 대선자금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만년 3위인 지지율 하락에서 비롯된 초조감 때문』이라고 못박고 『여당은 무책임한 폭로정치로 경제를 빈사상태로 몰아 넣고 있다』고 몰아 붙였다.

이에대해 이총재는 강연에선 『경제위축 등을 구실로 삼아 정치부패를 슬그머니 넘겨 버리자는 주장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정치비리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엄정히 처리돼야 한다』는 선에서 언급했다. 이총재는 그러나 질의 답변을 통해선 기다렸다는 듯 『제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폭로시점의 불가피성을 밝힌뒤 『이미지 실추라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조목조목 비자금의혹의 부당성과 검찰수사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과거 정치자금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두사람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김총재는 『비록 떳떳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정치자금을 수수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이총재는 『관행이라고 해서 법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총재가 『조건있는 돈은 받지 않았고 모두 공적인데 썼다.』고 하자 이총재는 『조건없이 과연 기업들이 힘들여 번 돈을 갖다 주었겠느냐』고 반격했다. 이총재는 내친 김에 김영삼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문제에 대한 자료가 밝혀지고 사실이 드러나면 법앞에 평등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두 주역을 제외한 다른 세후보는 대체로 양비론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사안에 따라 한쪽을 편드는 「들고 나기」의 입장을 취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본인이 이미 다 밝혔지만 의혹이 남았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문을 풀어야 한다』며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조순 민주당총재도 『과거 정치문화의 진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진상규명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검찰의 칼로 봄을 겨울로 바꾸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고 검찰수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태성 기자>

◎후보 강연내용 분석/‘21세기 리더십’ 소신 대결/부패척결·경륜·내각제·건전세력·젊음 각각 역점

한국일보사 주최의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후보들은 비자금정국에 대해 격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97 대선」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미래상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후보들은 특히 21세기를 앞둔 앞으로의 2∼3년이 우리나라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중차대한 시기를 이끌 적임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후보들은 21세기를 화두 삼아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졌다. 이회창 신한국당총재는 『21세기를 한민족 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패를 근절하는 등 정치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경륜과 준비된 리더십만이 지금의 파탄을 극복, 21세기의 변화에 적응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21세기 문턱에서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허용할 수 없다』며 『책임지는 내각제만이 위기극복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조순 민주당총재는 『과거 정치에 물들지 않은 후보와 건전세력만이 격변의 21세기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이전과 전혀 다른 21세기를 맞기 위해서는 젊고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문제에 대해 이회창 총재는 『과학기술에 집중, 경쟁력을 높여야만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경제자율화 민간주도 정부기능의 첨단화 규제완화 세정개혁 등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김대중 총재는 『사상 최대의 기업도산율 주가폭락 대외신인도 추락을 초래한 현 정권을 교체하고, 능력있는 세력이 경제안정, 강력한 한국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필 총재는 『경제해법은 이미 규제완화 금융·자본시장 선진화, 정보화추진 등으로 다 나와있다』며 『이를 엮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조순 총재는 『경제는 지금 총체적 파탄상황』이라며 『경제난 극복방안도 정치의 틀을 새롭게 하는 데서부터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제 전 지사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패배주의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며 『국민의 새로운 각오 아래 경쟁력 극대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폭력추방, 사교육비절감, 복지증진, 가족가치의 확립 등 보편적 가치들이 고루 언급돼 후보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이영성 기자>

◎각후보 진영 반응/“미디어정치 한단계 높여”/“국민에 직접호소장”“집약된 질문 좋았다” 평가

한국일보사 주최 대선후보초청 강연회에 참석했던 각 후보진영은 이번 강연회를 미디어정치를 한단계 높인 새로운 형태라고 말했다. 특히 비자금정국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일 때 토론회가 열려 각후보진영이 하고 싶은 얘기를 국민에게 직접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는 점을 평가했다.

신한국당 구범회 부대변인은 『한국일보사 강연회는 5명 후보를 한자리에 모아 객관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최초의 시도로서 새로운 정치토론문화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구부대변인은 또 『강연회는 자신있고 당당한 논리로 대안을 제시한 이회창 총재가 어떤 형식의 TV토론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확인해준 자리였다』면서 『특히 누구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깨끗한 정치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돋보였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측은 『강연회를 통해 신한국당폭로가 지지도 만회를 위한 고육지책임이 부각됐다』면서 『김대중 총재가 비자금정국에 임하는 입장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회의 박지원 총재특보는 『지금까지의 토론회는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위주로 진행돼 분위기가 산만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한국일보사 강연회는 질문이 집약돼 집중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자민련 이동복 비서실장은 『형식은 강연회였지만 사실상 후보들간 토론이 이뤄짐으로써 좋은 모델을 제시했다』며 『질문자들의 간단명료하면서도 편향되지 않는 질문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권오을 대변인은 『후보가 비자금 등과 같은 예민한 사안을 놓고 사실상 토론을 하도록 함으로써 입장을 비교하는데 도움을 준 진일보한 행사였다』고 말했다.

국민신당(가칭)의 황소웅 대변인은 『유권자들의 정확한 비교분석과 평가를 위해서 후보들간 합동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이인제 전 지사가 비전제시와 선의의 정책대결을 통해 신선함을 부각시켰다』고 주장했다.<홍윤오 기자>

◎대선후보 특별강연회를 보고/김원우 소설가/2분법적 평가 버리자

웬만한 식자라면 대선후보 다섯분의 경륜·학식·능력 등을 이미 훤히 다 알고 있다. 또한 후보들의 도덕성·강직성·참신성 등을 일단 괄호안에 묶어 버리고 나면 그들이 앞세우고 있는 정책도 오십보 백보다. 다들 효율적인 행정을 펴고,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를 살리고,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하겠다고 한다. 다섯분에게 15분씩 할당된 기조연설을 통해 다짐하는 여러가지 해박한 정책만 들어도 차기정권이 김영삼정부의 실정만은 만회하리라는 안도감이 든다. 그러나 그 말들의 성찬에는 어김없이 어느 정도의 공허성이 드러나고 또 그만큼 신빙성의 우열도 저절로 드러난다.

의외로 음성이 짱짱한 이회창 후보의 연설은 집권여당답게 조리가 번듯하다. 사업가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오늘의 조세행정을 개선하고 준조세 관행과 전쟁을 벌이겠으며 효율적인 첨단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등의 정책 제시에는 그 구체성이 드러나 있다. 뭉뚱그려 말하면 기왕의 불합리한 제도개혁론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인데 그 대안들이 판에 박힌 것이긴 해도 연설문으로서는 거의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가 당연히 역점을 두고 있는 구시대 정치의 마감, 곧 새로운 인물을 뽑음으로써 「깨끗한 정치」를 펴자는 호소에는 어딘가 설득력이 실려 있지 않은 게 흠이다.

정치비자금 폭로전에 휘말려있는 김대중 후보는 연설문없이 메모만 들고 나왔으나 역시 능수능란한 웅변가의 면모가 약여하다. 오늘의 세계정세가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다원화시대임을 직시한다든지, 「국산품애용이 곧 애국은 아니다」같은 직언은 김대중 후보만이 구사할 수 있는 능변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지지율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지나쳐 「만년 3위의 이회창 후보」같은 발언은 즉흥적 정치공세라는 느낌이 든다. 또한 관행으로 정치자금을 받아왔음을 시인하고 은닉 재산이 없음을 공언하면서도 지레 「선거판을 깨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한 말은 97년 대선불가론을 염두에 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김종필 후보는 정치행위 자체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따라서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내각책임제에의 집념, 리더십이 없는 김영삼정부에 대한 서슬 퍼런 질타, 만악의 근원으로서의 대통령제의 한계, 북한의 풍화를 기다리면서 안보체제를 강화할 것 등을 설파하는 그의 어조는 박학도 있고,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희한한 말을 유행시킨 당사자답게 언어 구사력은 풍요롭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의 「개성적인」 정치철학을 소화해 낼만한 시의와 민심이 따르지 않는듯 해서 안타깝다.

보스 중심의 붕당정치를 지양하자는 조순 후보는 「새로운 정치의 틀」을 짜자면서도 여야를 막론한 일종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대선의 향방에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조순 후보의 이 연대 모색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로지 당선되기 위해 권력구조의 개편을 흥정하고 있는 제1야당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당당하다. 뿐만 아니라 인사청문회제도의 도입, 대통령 권력 및 청와대 직제축소, 대통령 결선투표제 실시 등의 정책제시는 참신한 발상이기도 하다.

경선불복이라는 멍에에 대해 어떤 변명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인제 후보는 상투적 용어만 자욱한 연설문을 카랑카랑하게 낭독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고 있는 용어에는 싱크탱크, 비전, 환태평양의 중심국가, 민족문화의 창달과 같은 구태의연한 말들 뿐이다. 그런 여러 공약과 정책의 실천의지는 가장 젊은 후보답게 남다를지 모르겠으나 왠지 그 언어 사용에서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어쩔 수 없다.

질의 응답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화정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김대중 후보가 「판을 깨지 말고 선거부터 치르자」는 답변과 정치 비자금 파동의 해결책을 묻자, 「검찰에서든 국회에서든 의문을 속시원히 풀어주라」는 김종필 후보의 여유만만한 정답이었다.

이제 여러 유권자들은 지역감정을 앞세워 「꼭 누가 당선되어야 한다」거나 「누가 당선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억지발상을 버려야 한다. 그런 발상은 어차피 대선후보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선거의 기율을 무시하고 절대적 평가에 매달리는 맹신이거나 원망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도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실천의지」의 상대적 우위를 겸허하게 심판받겠다는 성숙한 「인격」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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