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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쉬운 서울을 만들자/고궁이 있어 더 멋있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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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쉬운 서울을 만들자/고궁이 있어 더 멋있는 서울

입력
1997.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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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기에 가려면 지하도를 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해야/광화문∼남대문로 1.8㎞엔 아예 횡단보도가 없다고궁에 들어와 있으면 여기가 정말 서울일까 싶다. 핏빛처럼 붉은색부터 불꽃같은 색, 주황과 노랑으로 이어지는 단풍의 행렬은 서울을 둘러싼 인왕산 북한산의 산세와 어울려 도시안에 있다는 생각을 잊게 해준다.

이렇게 서울을 아름답게 만드는 고궁에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다.

경복궁. 세종로에서 바라보면 광화문이 어서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지만 곧바로 갈 수가 없다. 세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길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다면 지하도를 건너 문화체육부 건물쪽으로 간 후 율곡로 동십자각 주위에 있는 지하도를 다시 건너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앞 지하도는 내려갈때 42계단, 올라갈때 42계단. 다시 동십자각 주위 계단을 무려 90칸이나 오르내려야 한다. 계단이 싫다면 정부종합청사를 지나 적선동쪽으로 간 후 통의동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한번 횡단보도를 건너 박물관 후문쪽으로 가야한다. 이때 경복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문이 없어 박물관터를 쭉 가로질러 가야한다. 다리품이 몹시 든다.

인사동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종로경찰서 앞에서 육교를 건너 삼청동 어귀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든, 한국일보사쪽으로 횡단보도로 건너 동십자각 지하도를 건너든 반드시 계단길을 한차례는 건너야 한다. 더구나 어느 계단에도 휠체어용 리프트는 없다. 장애자가 고궁 구경을 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덕수궁.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이곳은 인근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면 잠시 들르고 싶은 곳. 역시 쉽지 않다. 소공동쪽에서 온다면 을지로쪽의 프레지던트 호텔까지 걸어가서 지하도로 들어가야 한다. 36계단을 내려가서 왼쪽으로 휘어지면 덕수궁 방향. 다시 11계단을 내려서야 그 길로 들어선다. 이길은 다시 ㄱ자나 ㄴ자로 휘면서 출구로 내보내주는데 어느쪽 출구나 덕수궁 입구인 대한문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말하자면 지하계단을 한참 걷고도 지하에서도 빙빙 돌아서야 갈 수 있다는 사실. 휠체어용 리프트 시설은 역시 없다. 소공로 주위에는 지하도 입구가 8개 정도 있는데 혹시나 덕수궁과 연결될까 싶어 들어갔다가는 고생만 하게 된다. 더구나 지상에는 정확한 길안내 표시가 하나도 없다. 덕수궁까지 이르는 제일 짧은 길이 프라자호텔에서 태평로로 나가는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출구 2개. 그것조차 계단 72개를 오르내려야 한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경복궁 광화문까지 거리는 불과 1.1㎞ 정도. 어른이 잰걸음으로 걸으면 2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횡단보도로만 연결되어 있다면 서울의 문화유적을 만끽하는 도보문화거리가 되어 관광상품도 가능하다.

시민교통환경센터는 96년 광화문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세종로 태평로 남대문로 등 1.8㎞ 구간이 지상횡단보도가 전무한 「보행자의 지옥」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청앞에 시민광장을 조성해서 횡단보도로 연결하는 안을 내놓았으나 지금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딸 남현주(10·치현초등학교 5학년)양과 그 친구들까지 데리고 경복궁을 찾은 김정화(39·서울 강서구 방화동)씨는 『이제는 아이가 커서 계단도 참을만하지만 유모차에 태워다닐때는 서울길이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말했다.<서화숙 기자>

◎너무 많은 지하도·육교/서울에 300여개… 편안한 보행 방해

「사람은 왼쪽, 차는 오른쪽」이라지만 요즘 서울사람들은 「사람들은 지하도, 차들은 지상도」라고 읊조려야 할 판이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싶지만 걷다보면 곧 길은 끊어지고 지하도나 육교를 건너든가 지하철 통로라도 이용해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신세계백화점까지 450m 정도의 거리. 롯데에서 명동지하도를 건너 길을 따라 쭉 걷다가 다시 회현동지하도를 건너야 신세계에 닿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번이나 지하도를 오르내려야하는 번거로움때문에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택시를 이용한다.

미국이민 1.5세대로 서울생활 3년째를 맞는 조윤(33)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때 웬 지하도를 그렇게 많이 건너다녀야하는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한다. 청소년기를 보낸 뉴욕만해도 사람들은 지상 횡단보도를 통해 걸어다니고 차들이 지하차도를 달리게 돼있다는 얘기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조은주(31)씨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지상 횡단보도만 통해서도 어디서나 목적지를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보행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갖기 힘들 정도였다』

현재 서울시내에 설치돼있는 지하보도는 모두 65개소, 육교는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계속 철거되고있는데도 아직까지 247개나 된다. 312개의 거리에서 길을 건너려면 지하나 공중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해야하는 셈이다. 반면 지상의 탁트인 경관속에 쾌적한 보행을 약속받을 수 있는 횡단보도는 오히려 있는 것도 없앤다.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도시연대)가 지난 7월 실시한 「5호선 지하철역사 횡단보도 삭제 및 복원상황조사」에 따르면 5호선 개통후 총 49개 역중 22개 역 부근의 35개 횡단보도가 제거됐다. 그후 주민들의 탄원과 여론에 밀려 11개 역의 22개 횡단보도가 복원되고 오목교역과 군자역 등 4개 횡단보도가 부분복원됐지만 7개 역 9개 횡단보도는 여전히 복원되지않고 있다.

횡단보도가 없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9조 「횡단보도 설치기준」 4항에 「횡단보도는 육교 지하도 및 다른 횡단보도로 부터 200미터 이내에 중복설치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도시연대의 김은희 간사는 『기본적으로 보행자의 편의보다는 차량의 흐름을 우선 고려하는 도로행정이 걷는 도시를 만드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있다』고 지적했다.<이성희 기자>

◎좌우측 통행 문제 없나/사람·차 통행방향 달라 ‘잦은 사고’

도시에서는 대로변을 걷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척 긴장하게 된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어느 쪽으로 비켜야 할지 우왕좌왕하거나 지하도나 육교에서 어느 쪽 길을 타야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바쁘게 건너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들이 마구 뒤섞여 불편했던 것도 대도시 시민들이면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늘상 지나치는 이런 행동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 바로 차량통행과 사람의 보행방향을 달리 지정한 도로교통법이 시민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 도로교통법은 사람은 도로의 좌측으로 가고(8조) 차는 우측으로 가도록(12조)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의 혼란은 바로 이렇게 차와 사람의 통행방향이 일치되지 않아서 생기는 무의식적인 혼동의 산물. 당연히 불편하다. 원로 외교관인 김창훈씨는 『좌측통행이냐 우측통행이냐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차와 사람의 통행방향을 달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영국 스웨덴 호주에서는 좌측 통행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에서는 우측 통행을 한다』고 들려준다.

사람과 차의 통행방향이 다르기때문에 생기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통사고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데 있다. 차도에 바짝 붙어서 걸어가는 사람과 그 옆의 자동차가 진행방향이 같으므로 갑작스런 사고로 차가 인도로 뛰어들어도 미리 알아채기 힘들다. 대로변을 걸으며 느끼는 긴장감은 바로 뒤쪽에서 달려오는 차를 계속 의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수범 연구원은 『차와 마주 보면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므로 차와 사람의 통행 방향을 달리 만든 법 규정은 빨리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보차혼용도로의 경우 안전을 위해 반드시 우측보행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가 좌측 우측이 달리 된데는 역사적인 원인이 있다. 보행문화는 일제때 일본식으로 통일되었으나 차량문화는 해방후 미국식으로 정착된 것. 이때문에 지하철도 일제때 건설된 국철과 연결된 1호선은 좌측통행을 하도록 하고 있으나 2∼8호선 지하철은 우측통행을 따르고 있다.

일본연구가 조양욱(일본문화연구소장)씨에 따르면 일본에 좌측통행이 자리잡은 것은 사무라이들 때문이다. 『이들은 왼쪽 허리춤에 긴 칼을 차고 다니므로 우측통행을 하면 좁은 길에서는 칼끼리 부딪친다. 사무라이에게 칼을 건드리는 것은 곧 도발이었으므로 이를 막기위해 좌측통행이 자라잡았다』

우리 전통과도 무관한 좌측통행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노향란 기자>

◎인터뷰/최정한 도시연대 사무총장/차우선 도시개발 빨리 바꿔야죠

국내에서 도보권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교통관련전문가와 지역활동가로 이루어진 「시민교통환경센터」다. 버스개선 등 교통환경과 관련된 운동을 펼치던 이 단체는 보행자의 안전이나 권리가 방치돼 있는 국내현실을 접하면서 운동의 방향을 보행자위주로 전환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보행자중심의 환경개선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할 것을 골자로 하는 보행조례를 서울시의회 이름으로 통과시켰고 그 힘을 몰아 지난 6월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강병기 구미전문대 학장·김우창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공동대표)를 발족시켰다.

『지난해 보행자가 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무려 5,000여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학교주변이나 주택가에서도 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차도에 밀려 횡단보도 대신 지하도나 육교가 들어서는 등 보행자보다 차가 우선시되는 도시개발과 시민의식을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도시연대」 사무총장 최정한(42)씨의 설명이다. 지하철공사에 근무하면서 교통문제에 눈을 뜬 그는 「시민교통환경센터」 사무총장에 이어 「도시연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보행자운동은 궁극적으로 도시공간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통 도시문화까지 포함하는 종합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는 설명대로 「도시연대」는 모태가 된 「시민교통환경센터」를 오히려 산하 위원회로 거느릴 정도로 조직과 사업규모가 확장되는 추세다. 일반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도 500여명에 이른다. 월 1만원의 회비를 내는 이들은 지역별 보행환경모니터활동이나 자전거타기운동과 같이 지역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시청앞 보행자광장만들기, 인사동 걷는 거리만들기, 우리나라 도시들을 보행자관점에서 평가하기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개발계획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상호(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 김경철 황기연 정석(서울시정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강우원(광진구청 구정연구단 실장) 등 50여명의 도시개발관련 전문가들이 워크샵과 정책회의를 통해 바람직한 개발계획을 제시하고 서울시나 지방자치체 등에 이를 적극 건의하고 있다. 「인사동걷는 거리만들기」는 서울시가 낸 공모에 「도시연대」안이 채택돼 구체적인 계획이 모색되는 단계다. 또 시청앞 광장을 보행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도시연대」측의 제안은 서울시가 축소된 형태로나마 추진중이어서 짧은 기간이지만 이 단체가 이룬 성과가 크다.

이와 함께 초등학교를 순회하면서 교통안전교육과 자전거운전면허증을 발부하는 「자전거 안전교실」 열고 있다. 『자전거의 확산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자동차없는 도시를 시도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이나 시내 주요 지역에 자동차 진입을 금지하고 있는 영국 요크시에서 우리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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