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총수들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경제계에서 들고 나오는 전유물 중의 하나가 「경제위기론」이다. 문민정부 출범초기 사정의 칼날이 번뜩이자 재계는 「경제가 큰 일이다」며 맥을 놓았다. 정부는 곧 「신경제 1백일계획」을 내놓고 재계에 경제활성화를 주문하며 각종 기업지원책을 쏟아 부었다. ◆그뒤 전·노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재계총수들이 줄줄이 사법처리의 위기에 몰리자 역시 「경제가 큰 일이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재계는 투자계획을 멈춰 세웠고 증시는 폭락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재판 계류중인 재계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치해 위무하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것을 당부했다. ◆이번에도 신한국당의 비자금폭로가 관련기업 총수의 사법처리 가능성으로 이어지자 예의 경제에 대한 우려가 여론을 탔다. 재계에서는 집권당을 향해 들어보기 힘든 독설도 퍼부었다. 폭로 당사자인 신한국당이 황급히 경제단체대표들을 만나 진무에 나섰다. ◆개혁바람이 불거나 정치권이 요동을 칠 때마다 등장하는 경제위기론은 과연 옳은 지적인가. 총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재계의 엄살인가, 아니면 경제를 볼모로 한 재계의 협박인가. 엄살도 협박도 아니다. 이번에도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위기론을 뒷받침하는 듯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갈수록 커지는 재벌의 경제력집중과 그 정점에 있는 총수전횡의 대기업구조, 비자금이 가능한 불투명한 경영, 이에 편승한 정경유착이 상존하는 한 「재계총수가 다치면 경제가 흔들린다」는 등식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경제개혁이 왜 필요한가도, 경제개혁이 왜 더딘지도 여기에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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