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권자 60% 이상은 자신이 민주당원 또는 공화당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성장과정에서 출생신분, 환경과 종교적 배경, 정치이념 등을 바탕으로 정당과의 일체감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특정정당과의 자기 일체성은 미국의 대통령, 의회 선거 때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그래서 미국의 양대정당은 전통적 지지자들을 확고히 끌어들이는 선거전략을 우선적으로 구사한다. 세금이나 보험 등 구체적 정책에 대한 세세한 차이까지 따지는 유권자의 정치의식을 감안, 철저하게 상대방과는 다른 정책을 제시한다. 이것이 미국의 선거가 정당간의 정책대결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미국의 선거가 정책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후보 개인의 자질이나 이미지를 소홀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누구든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로운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도록 돼 있다. 후보들의 충격적인 스캔들이 선거에 임박해서 새로 밝혀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다 유권자들의 강력한 정당소속감 등 정치환경 때문에 정책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합리적 이성적 판단에 따라 정당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교육과 정치사회화 과정이 절대 부족해 국민 사이에 정당정치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팽배해 있다. 계층·이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정당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치환경의 악순환도 상당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도덕성 등을 엄정하게 분별하고 관리하는 인식과 제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편의주의 탓인지 덜 타락한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선거문화이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을 제쳐두고 선거 때 마다 「정당간의 정책대결」을 보고 싶다고 외치는 것은 숲속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적 이해로만 뭉친 정당들과 결점이 수두룩한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이 얼마나 온당한 것일까. 제대로 된 정책대결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깨어있고 높은 도덕성을 가진 후보들이 존재할 때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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