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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두 거장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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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두 거장감독

입력
1997.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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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 날아온 두 거장과의 만남이 영화팬들을 기쁘게 했다. 유럽의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는 올해 칸과 베니스의 그랑프리를 거머쥔 최고 감독이다. 자국에서도 아직 상영되지 않은 「체리 향기」와 「하나비」를 먼저 보는 즐거움은 영화제의 꽃이라 할만하다. 두 감독의 인터뷰와 작품을 소개한다.◎체리향기 키아로스타미<이란> /내 영화의 근본목적은 사람들간 동질성의 확인/삶은 고해의 연속이지만 그보다 나은 것도 없지않은가

이란이 낳은 세계적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기자회견은 철학 강의 같았다.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예술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 왔던 이 감독은 영화와 인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 듯 질문 하나하나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모두 털어 놓았다.

-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영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정식 영화공부를 한 적이 없다. 청년 시절 이란에는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가 많이 들어왔다. 당대의 거장인 자바티니가 했던 「당신이 길을 가다 만나는 첫번째 사람에게서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다」라는 말은 이후 내 영화의 원칙이 됐다. 소설이나 다른 영화에서 소재를 찾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도 멋진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마르케스의 이야기처럼,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즐겨쓰는데.

『영화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미국영화처럼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삶을 만들어 내는 방식과, 관객들이 아주 비슷하다고 느끼며 즐거움을 얻는 방식이 있다. 나는 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람들의 비슷한 점을 이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머나먼 나라 이란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도 관객이 자기와 흡사하게 느껴, 「사람이란 결국 같다」고 깨닫게 하고 싶다』

-현실의 삶을 그대로 그린다고 하지만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사회속에서 삶의 부정적인 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이란은 물론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란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나라를 스스로 선택했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부처님이 얘기 한 것처럼 삶은 고해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보다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울 수 있다. 스스로도 삶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삶보다 더 나은 것은 없지 않은가. 나는 영화에서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체리향기’ 줄거리◁

영화는 자동차를 타고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찾는 주인공의 길을 따라간다. 그의 차를 타는 세 사람이 차례로 등장하며 주인공과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쿠르드족 군인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 아프간인은 자살이 신의 정의에 위배되다는 이유를 들어 주인공의 부탁을 외면한다. 세번째 박제를 만드는 노인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젊었을 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자살을 하려 했던 적이 있소. 그러나 목을 매려고 올라간 나무에서 우연히 나무 열매를 맛보고 그 달콤함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 아침을 맞게 되었지. 그 열매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서 삶의 기쁨을 얻게 됐어요』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가 자살이 아닌 삶을 예찬한 영화라고 말한다. 삶을 즐기는 사이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비 기타노 다케시<일본> /완벽한 영화란 대사·음악없이 감동 주는 것/일본서 푸대접받는 내 작품 유럽·한국서 인기얻어 기쁘다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날카로운 풍자로 유명한 개그맨이다. 자신의 예명 비트 다케시의 이름을 딴 쇼프로그램까지 갖고 있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는 무거운 영화와는 달리 유머러스한 답변으로 회견장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특히 회견을 끝낸 뒤 『꼭 할말이 있다』며 기자들을 붙잡고는 『부탁이 있는데 축구 한번만 져줄 수 없냐』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영화제에서 매진사태에다 심야 상영까지 추가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6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일본에서 한번도 돈을 번 적이 없다. 일본 젊은이들은 미국 영화나 애니메이션만 본다. 「하나비」도 비슷할 것 같은데 유럽과 한국에서 의외로 인기를 얻어 기쁘다』

―폭력과 유머를 독특하게 사용하는데.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때리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맞은 사람만 보여준다. 100년이나 영화를 보아온 관객들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다 안다. 엑스트라도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쓴다. 폭력과 유머는 움직이는 시계추의 양쪽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폭력과 유머를 영화의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비중으로 나란히 배치해서 찍고 싶다』

-영화를 찍는 원칙은.

『영화의 가장 기본은 무성영화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영화는 대사와 음악 없이도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편의 시처럼 영화를 찍고 싶다. 정해진 시나리오로 찍지 않는다. 배우와 카메라맨과 현장에서 대화를 나눈 뒤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찍는다』

-개그맨과 영화감독의 관계는.

『코미디는 영화를 할 수 있는 돈을 벌게 해준다. 코미디할 때는 대사로 승부를 걸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대사를 별로 안하고 싶다.(실제로 「하나비」에서 다케시는 거의 대사를 하지 않는다) 코미디는 정치나 사회를 풍자하는 게 주내용이지만 영화에서는 정치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넣는 것을 피하고 있다』

▷‘하나비’ 줄거리◁

이번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하나비」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한 형사(기타노 타케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슬픈 존재에 관한 영화다.

병으로 딸을 잃은 후 아내마저 암선고를 받고, 자신의 실수로 동료 형사가 총을 맞아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는다.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 위한 형사의 처절한 노력이 슬프게 펼쳐진다. 친구에게 도구를 사줘 그림을 그리게 하는 그는 야쿠자의 빚을 갚기 위해 은행강도가 되고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슬픈 존재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색깔은 푸른 색이다. 온통 푸르게 펼쳐진 화면 속에서 그는 지독한 침묵으로 슬픔의 깊이를 더하고, 사이에 스며나오는 따뜻한 웃음은 죽음을 향해가는 그의 삶에 대한 희망을 슬며시 보여준다. 지극히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슬프다. 하지만 유머가 있고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영화이다.<부산=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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