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공동수상한 소설가 성석제(37)씨와 윤영수(45)씨의 수상소감을 싣는다. 단편 「유랑」으로 수상한 성씨는 「문학은 엄숙하고 무서운 성소」라며 자세를 여미었고, 중편 「착한 사람 문성현」으로 수상한 윤씨는 「소설을 쓰는 행위는 결코 객기일 수 없다」며 각오를 다졌다. 평범하면서도 90년대 말 한국문학의 자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작가들의 소회이다.◎성석제 “문학은 엄숙한 성소”
어린 시절 제게 어른들은 비유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줄이는 것, 미숙한 뜻을 실어 글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에게 비유의 궁전인 문학은 현자들이 만들어놓은 성소였습니다. 그 성소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배하는 것, 오로지 그게 다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자리에서 또 감히 비유를 쓰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습니다.
저를 이 지경에 빠뜨린 사람들 가운데 아무리 엄숙하고 무서운 성소라도 함께 가면 덜 무섭다고 유혹한 벗이 있습니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기에 저의 원망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맙다고 하면 그 말은 들어줄 것입니다.
또 한 벗은 제게 글이라는 매혹적인 숲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역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진정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디로 흐를까도 모르는 채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만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저는 벗들을 잘 둔 것처럼 행운의 패를 뽑은 것 같습니다.
과분한 평가를 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조건 없는 좋은 상을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는 한국일보사에도 감사드립니다. 선후배님, 여러 벗들, 제 기꺼움을 나눠가져가 주십시오. 내일부터는 제가 혹 함부로 비유를 쓰지는 않는지, 옛적의 그 어른들처럼 지켜봐 주십시오.
오늘치의 비유를 다 쓴 것 같으니 지금부터 놀겠습니다.
◎윤영수/“소설을 어찌 객기로…”
느지막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저는 확실히 문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등단해서부터 오늘까지 많은 분들의 후의와 격려를 분에 넘치게 받았습니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거의 매번 일면식 없는 비평가들의 격려가 있어 주었고 또 문예지들이 때마다 알맞게 청탁을 해 주셨습니다. 독자들의 전화와 엽서를 받고 이 맛에 소설을 쓰는구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특히 이번 수상작품의 경우에는 멀리 강원도 동해시에 사시는 김형민님의 전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문성현과 꼭 같은 처지의, 30대 후반의 장애인으로서 그분의 힘겨운 목소리, 진실함, 진중한 삶의 태도를 접하고 저는 소설의 주인공이 책 밖으로 살아나온듯한 기이한 감동에 한동안 빠져 있었습니다. 소설을 써서 세상에 내어놓는 행위가 결코 가벼울 수도, 객기일 수도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상을 안 주셔도 저는 기 안죽고 계속 소설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발표할 지면과 제 책을 묶어주겠다는 출판사가 있는데 작가가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기뻤습니다. 이제까지 상을 탄 많은 다른 작가들도 그때마다 이렇게 기뻤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많지 않은 숫자지만 제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열심히 쓰겠습니다. 진지한 것은 진지하게, 우스운 것은 우습게 쓰겠습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더욱 긴장하겠습니다.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한국일보사, 제 책을 내 주신 창작과비평사, 민음사, 그리고 수상작 「착한 사람 문성현」을 쓰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울어준 내 소중한 친구 L,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