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풍경상처의 거울90년대 서정시의 미학이 폐허의 상상력에 의지한다고 할 때, 이윤학은 그 첨예한 예가 될 수 있다. 이윤학의 시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거의 언제나 버려지고, 잊혀지고, 상처받은 것들이다. 그의 새로운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문학동네 발행) 역시 그러한 문법의 연장선 위에 있다. 우리는 이 시집에서 시인 특유의 상처의 풍경, 유적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니, 상처의 유적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까.
시인은 「제 몸의 무게로, 조금씩/ 잔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목이 떨어진 석불들을 보거나,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고목의/ 어두운 구멍은 언제나/ 그를 향하여 조그맣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고목 속의 풍경, 「늙어서 죽는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 눈을 감고 살고 있는」 분수대, 「시체 썩은 물을 담고 있는」 연못, 「뜨거운 폐수가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파이프 속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얼어붙은 시궁창, 「가래침과 담배꽁초, 일회용 종이컵들/ 구겨진 신문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쓰레기통 속의 더럽고 칙칙한 풍경들을 본다. 특히 「애를 긁어낸 여자의 자궁과도 같을 얼어붙은 연못의 처절한 바닥」, 「농약병과 술병이 있」는 저수지의 바닥 같은 이미지는 이윤학 시의 내면풍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시인에게 세상의 풍경은 늘 불구의 그것이기 때문에 「날개달린 거지」 같은 비둘기떼, 「시퍼렇게 멍이 든」 싹들, 「이 세상을/ 꽃상여로 보여주던 꽃들」이라는, 일반적인 미적 선입관을 뒤집는 비유들이 가능해진다. 그 풍경들은 「실체로부터 추락한 그늘」, 「현재로부터 추방당한 그늘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것들은 자본주의적 일상의 화려한 풍경에 대한 「반풍경」이 되며, 삶의 어두운 뒷면을 비추는 상처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시인은 그러한 방식으로 상처와 치욕의 시간들을 견딘다. 다만 우리는 시인이 「내 생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라는 독한 저주로부터 과연 풀려날 수 있을지를 안쓰러워할뿐.<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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