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불=915원 환율급등따라 기업 실질채무부담 급증/1원 오를때 479억원씩 늘어/환율급등 계속땐 환차손 우려로 해외자금 대규모 유출/심각한 외환위기 가능성외환시장이 외채위기의 화약고로 대두하고 있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기업의 실질채무부담이 증가하고 달러사재기 등 환투기 현상과 함께 외화자금 유출 가능성까지 엿보여 외환시장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환율이 지금 추세대로 계속 급등할 경우 극심한 환투기와 외환유출로 인해 외채상환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올들어 달러환율은 1달러당 840원대에서 915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말 844.20이던 달러환율은 올 1월 861.30, 4월 892.00, 8월 902.80, 10월11일 현재 914.30으로 급등 추세에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7.7%나 평가절하된 셈이다. 환율이 이와같이 급등하는 것은 국제수지 적자 누적에 따른 외환공급부족과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해외차입 차질이 원인. 환율이 실제보다 고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기업의 실질 외채부담 증가는 엄청나다. 현재 국내 상장사들의 달러화 부채가 479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환율이 1원 올라갈 때마다 국내기업의 원화환산 실질채무액은 479억원씩 증가하는 셈이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도 엔저현상으로 큰 기대를 걸 수 없어 기업의 재무구조는 날로 악화하고 있다. 환율상승에 따른 96년 외채원리금(107억달러) 상환 부담 증가액만 3,200억원에 달했고 올 상반기 상장기업들의 외환관련 손실은 2조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환율이 950선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환차손과 채무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달러사재기」를 통한 환투기 징조도 나타나고 있다. 9월말 현재 기업의 거주자 외화예금은 적정선의 2배인 40억달러에 달하고 총외화예금 규모도 7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의 외환가수요와 함께 수입대금 조기결제와 수출대금 지연결제가 일반화하면서 외환공급 부족으로 인한 환율상승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해외자금의 대규모 유출은 가장 걱정되는 부분.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187억달러의 해외자금이 환차손 때문에 급속하게 빠져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경제신용도 추락 과정에서의 환율급등은 대규모 자본유출로 이어져 외환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외국자본이 대거 유출되면서 외환거래가 중단되고 환시장 자체가 붕괴하면 멕시코와 같은 대외변제능력 상실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환율급등에 따른 외환위기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재경원은 현재의 환율이 실질환율에 가깝고 자본자유화 정도가 낮아 급격한 환율변동이나 자본유출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의 평가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환율관련 국가위험도가 96년말 5점에서 97년 9월 3점으로 떨어져 36개 대상국중 32위로 밀려났다. 미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적정환율이 달러당 950원 수준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은 바 있고 중앙은행의 환시장 개입으로 인한 인위적인 고평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부문의 부실과 외환보유고 감소에 따른 통화방어능력 부족도 위기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LG경제연구소는 채권시장 개방 등 자본자유화가 진전될 경우 자유로운 자본 유·출입이 가능해 동남아와 같은 외환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국내 외환시장은 대규모 헤지펀드들의 공략대상이 될 공산이 커 외환위기 가능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외국의 외채 상황/‘대외자산 1위’ 미국이 외채도 1위/영국·일본이 뒤따라 그러나 ‘꾼 돈’만큼 ‘받을 돈’ 많아 문제없어/개도국중엔 멕시코 1위/금융시장 위기맞은 동남아 4국도 부담 커
빚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95년말 현재 총외채가 4조1,266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이 최대 채무국이다. 그 뒤로 영국(2조4,390억 달러) 일본(1조8,875억 달러) 독일(1조4,845억 달러)의 순이다. 모두 경제력이 앞서고 산업 규모도 큰 선진국들. 이들 나라들은 「꾼 돈」이 많지만 「받을 돈」도 많은데다 상환 능력도 충분해 외채가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돈을 얼마나 꾸어주었는 지를 가늠하는 대외 자산 규모 순위도 총외채 순위와 똑같다. 미국(3조3,529억 달러) 일본(2조7,248억 달러) 영국(2조5,062억 달러) 독일(1조6,719억 달러) 순.
최대의 채무국이자 채권국인 미국은 총외채에서 대외자산을 뺀 순외채가 7,737억 달러에 달해 최대 순채무국이다. 반면, 일본은 대외자산이 총외채보다 많아 최대의 순채권국이다. 순외채 수치는 마이너스 8,373억 달러.
외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빚을 얻어 경제를 일으키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이다.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만큼 산업기반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데다 국제유동성 등에 불안의 소지도 많기 때문이다. 세계은행도 개도국만을 대상으로 외채 통계를 뽑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도국 외채 통계에 포함돼오다 95년 이후 고소득국가로 분류되면서 순위에서 빠졌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자료에 따르면 95년말 현재 개도국 중 총외채가 가장 많은 나라는 멕시코(1,657억 달러). 국민총생산(GNP)중 외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69.9%에 달한다.
과도한 외채를 버티지 못하고 국민경제 붕괴 직전까지 치달았던 94년 위기의 후유증에서 아직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외환정책 실패로 금융시장 붕괴 위기에 처한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4개국도 외채 부담이 크다.
바트화 폭락으로 외환시장 파탄의 위기에 처한 태국은 국민총생산(GNP) 대비 총외채가 34.9%에 달하며,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도 경제 규모에 비해 외화 유입이 과다한 것으로 나타난다.<김경화 기자>김경화>
◎94년 외환위기 멕시코는 ‘타산지석’/어설픈 고금리 정책과 단기투기자금 유입 합작/국내 정정 불안해지자 일시에 자본유출 경제파탄 불러와
94년 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멕시코의 외환위기는 크게 경제구조의 취약성과 정치사회적 불안정, 경제정책의 실패 등에 원인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외채위기로 연결됐다.
멕시코는 저축율이 낮아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해외자본에 의존했다. 그러나 유입된 해외자본은 투자보다는 가계 등 민간부문으로 흘러나가면서 소비증대를 부추겼다. 또 외채중 단기성 투기자금이 8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할 경우 자본 유출이 일시에 일어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곧 이어 몰아 닥친 정치·사회적 사건들은 이같은 우려를 현실로 보여줬다. 빈곤층 원주민들인 치아파스의 무장반란과 노동조합 교사 좌익단체 등의 반정부 시위로 사회불안이 고조됐다. 또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피살되고 에르네스토 세디요 현대통령의 정치고문이 피살되는 등 일련의 사태로 정치적 위기감이 조성됐다. 이는 곧바로 멕시코의 국가신용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을 거둬 들이기 시작하고 내국인들도 달러 사재기에 가세하면서 외환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실패작으로 분석된다. 90년대 초부터 경상수지 적자 누적으로 멕시코 페소화에 대한 절하 압력이 증가했으나 멕시코 정부는 물가상승을 우려해 강력한 페소화 정책을 유지했다. 경상수지적자는 점차 불어났고 정부는 이를 외국자본으로 메꾸기위해 고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경상수지적자→고페소정책→외채도입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외채는 계속 불어나 급기야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멕시코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던 94년 말 환율변동을 완전 자유화하면서 페소화 방어를 포기했다. 이 바람에 대량의 국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연말까지 약 100억달러의 외국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페소화는 폭락했다.
93년 말 245억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액은 94년말 61억달러로 줄어든 반면 외채는 급증, 88년 628억달러에서 94년에는 1,422억달러가 됐다. 6년만에 두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94년 3.5%였던 국내총생산(GDP)성장율은 95년 마이너스 6.2%로 급강하했고 94년 7.1%이던 소비자 물가상승율은 95년에는 52.0%가 됐다. 경제가 파탄위기로 간 것이다. 96년이후 멕시코는 경제성장을 플러스로 돌려놓는 등 상황을 호전시키고 있으나 페소화 폭락의 충격이 너무나 컸기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극복이가능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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