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후보에 관한 잇단 비자금 폭로와 이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비자금 폭로 여파는 정국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까지도 뒤흔들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비자금 문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확연히 맞서고 있다. 신한국당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처럼 정치자금을 개인적으로 축재한 만큼 검찰이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국민회의는 오랜 관행대로 김대중 후보가 기업들로부터 아무런 조건없이 받은 것이므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신한국당이 3김청산과 부패척결 차원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고 국민회의는 이회창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계산된 선거공작이라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양당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자금 폭로가 국가적으로 불안과 혼돈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김영삼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15대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치와 선거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강조해 왔으나 비자금 정국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으며 의당 수습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비자금 폭로에 초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명예총재로 있는 신한국당이 폭로를 주도한데다 국가통치권자로서 폭로로 인해 정치·경제·사회가 흔들리고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있음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김대통령이 비자금 폭로에 반드시 개입, 단안을 내려야 하는 것은 금융실명제의 원칙과 정신이 크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명제는 공직자 재산공개와 함께 김영삼 정부의 대표적인 개혁 과업이 아닌가. 실명제의 생명은 자금운용과 흐름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이다. 따라서 실명제에 관한 긴급명령에는 분명히 금융거래 내역은 본인동의와 법원의 영장이 없으면 누구도 볼 수 없게 되어 있음에도 신한국당이 김후보의 엄청난 비자금 상황과 특히 은행 계좌번호를 입수할 수 있었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만큼 정보·자료의 입수경위를 조사해서 국민에게 이를 밝혀야 한다. 이런 식으로 거래비밀이 노출된다면 실명제는 한낱 껍데기가 되고 말 것이다.
다음 신한국당이 잇달아 비자금을 폭로하고 검찰에 대해 수사하라고 계속 촉구하는 것도 문제다. 검찰은 폭로 내용만으로는 수사할 요건이 안된다고 하는데도 거의 압력을 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진정으로 비자금의 규명을 원한다면 보다 충실한 자료를 근거로 고발하면 될 것이 아닌가. 신한국당이 고발은 않고 수사만 촉구하여 국민에게 많은 의구심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대통령은 좀 더 분명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부정척결 차원에서 사법적 해법으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케 할 것인지, 아니면 경제·사회의 안정을 위해 신한국당으로 하여금 폭로를 중단케 하고 자신의 대선자금과 함께 15대 대선후 조사케 할 것인지 단안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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