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금융기관이 서로 목을 조이며 부도를 재촉하고 있다. 연초 한보그룹을 필두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 대기업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급기야 기아그룹까지 무너지면서 경제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가운데 쌍방울이 또 긴급한 부도위기에 처했다. 실로 살아남을 기업이 없을 정도로 부도의 공포가 크다.한편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고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금년들어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인해 발생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10조원을 넘는다. 가뜩이나 구조적 부실로 어려움이 큰 상태에서 뜻밖에 발생한 대규모 부실채권은 금융기관들을 부도의 위기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결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부도의 악순환을 형성하여 공멸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부도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증권시장 붕괴이다. 94년말 1,100포인트를 넘던 주가가 계속 곤두박질하여 600선을 위협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자본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어 증권시장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증권시장은 투자자들의 재산증식 기능은 물론 기업에 대한 자본조달 기능까지 상실했다. 증권시장의 마비는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수익성과 경영난을 악화시키고 있다. 또 기업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투자를 중단시켜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끊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내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해외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하여 외화자금 조달의 길이 거의 막혔다. 대외결제부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외국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외국 금융기관들의 대출금회수가 본격화 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국면에 빠질 수 있다. 쌍방울의 부도위기가 바로 외국 금융기관의 대출금 회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국내기업과 현지법인들의 해외채무총액은 500억달러에 육박한다.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태에 빠진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현 경제팀은 지난 3월 한보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경제의 해결사로 들어섰다. 그러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치 대신 금융실명제가 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며 개혁의 후퇴를 들고 나왔다. 경제정책 방향을 거꾸로 정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기업의 연쇄부도에 대한 비상조치로 부도유예 협약을 내놓았다. 이 협약은 어음시장 질서의 왜곡과 금융기관들의 대출금 회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여 기업들의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의 결정적 실책은 기아 처리에 있다. 정부는 기아를 3자에 인수시키려는 정치적 의도하에 법정관리만 계속 고집하고 있다. 지난 3개월동안 기아사태가 악화하면서 1만7,000개의 협력업체들이 부도위기에 빠지고 경제는 표류상태가 되었다.
방향감각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 경제를 인질로 잡고 정치권의 비자금 폭로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치와 경제가 함께 무너질 우려가 크다. 여당은 집권을 위해 금융실명제를 불법으로 악용하면서 증거도 명확하지 않은 비자금 연루 기업들의 명단을 발표하여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기업경영 의욕의 위축은 물론 해외신인도 하락으로 국제경쟁력 유지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지원정책을 펴서 도와줘도 어려운 판에 정치권은 선거에 이기겠다고 경제파괴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의 실책을 인정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도의 악순환을 끊고 경제의 심리적 붕괴부터 막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기아를 비롯한 부실기업들에 대해서 경제불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태 해결방안을 시급히 내놔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쓰러지는 대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을 살리는 것은 물론 경제안정을 회복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기업들도 부실 계열기업과 보유부동산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문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자구노력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당장 경영이 어렵다하여 기업들에게 어음할인과 대출을 중단하는 것은 기업들과의 동반자살을 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의연한 모습으로 자구노력을 꾀하는 국민 경제적 차원에서 주어진 기능을 발휘하는 본연의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싸움 중단이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이전투구는 모두를 쓰러뜨리는 최악의 국민 배반행위이다. 한시 바삐 정치권은 흙탕물 난투극을 지양하고 선거를 정책대결의 장으로 전환하여 경제도 살리고 국민의 지지도 얻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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