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에게 1심에서 특가법상의 알선수재죄와 함께 조세포탈죄마저 적용된 것은 사법 사상 일찍이 유례없었던 첫 선례여서 엄청난 의미와 현실적 부담을 동시에 안겨준 것이다. 앞으로의 정치자금문제 처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그에 대한 사법부의 3년유기징역형 선고와 20억원 가까운 벌금·추징금이 선고된 의미를 꼽자면 물론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소위 「살아있는 권력」 주변의 비리성역을 처음으로 깨뜨린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번 조세포탈죄 적용으로 말미암아 「떡값」으로 통해온 음성적인 정치자금수수 관행에 대해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처벌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재판부가 『정치자금법상 면세대상을 제외하고는 정치자금도 원칙적으로 과세대상이며, 정치자금의 은닉행위에 대해 조세포탈범으로 처벌한 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이 불합리하거나 국민의 일반 법감정에 배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이유를 밝힌 것을 우리 정치권과 재계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을 거치며 판례로 확립될 경우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이었던 정경유착과 검은 정치자금수수관행에 일대 태풍이 몰아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지금 당장 신한국당의 폭로로 말미암아 문제가 되고 있는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 문제는 물론이고 여타 92년 대선과 관련된 정치자금 문제 처리에 무서운 사법적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법부의 이같은 전향적 자세는 물론 국민적 법감정과 구시대 비리구조 개혁을 바라는 시대정신 때문이다. 사법부는 앞서 한보사건 재판에서 구체적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포괄적 뇌물죄를 처음으로 인정한 바도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정치권도 정치자금 비상 속에서 정치개혁 입법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사법부나 검찰도 여타 정치자금사범들에 대해 적극적 단죄와 수사를 펴지 않을 수 없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큰 의미를 떠나서 보면 국민 된 입장에서는 미진하고 서운한 구석도 없지 않다. 당초 총체적 한보비리의 배후나 몸통이 아닌가 했던 의혹,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 온갖 국정과 인사에 개입했다던 비리혐의, 이미 쓰고 남은 은닉 대선자금임이 사실상 드러났다는 70억원 등에 대한 철저규명 불발과 확실치 못한 처리 등등 여러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요직인 안기부운영차장이면서 김현철씨의 음성자금 관리와 정보유출 등을 사실상 주도한 혐의를 받았던 김기섭씨에게 알선수재죄만 적용, 집행유예(3년)를 선고한 것에 대해서는 아울러 미진하게 여기고 있다.
대통령아들 김현철씨 단죄는 3개월여의 수사와 재판 3개월 등 반년만에 이제 첫 사법적 관문을 통과했다. 앞으로 2심 및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려야겠지만 그 보다 떡값 처벌 선례를 어떻게 제대로 살려나가야 하는가가 더욱 큰 관심사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와 검찰을 더욱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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