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우리 여성이 태평양전쟁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실은 야마다니 데쓰오(산곡철부)라는 일본인 영화감독에 의해 처음 문제화됐다. 오키나와(충승)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던 배봉기(91년 작고) 할머니의 일생을 그린 기록영화 「오키나와의 할머니」가 계기였다. ◆일본이 군대의 노리개로 우리 여성을 잡아가고 속여 데려간 일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그 경험을 증언하는 사람이 없어 참담한 실상은 가려져 있었다. 79년 이 영화를 기록화한 같은 이름의 책을 본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는 곧 이 문제 취재에 들어가 90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돈벌이가 될 수 없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야마다니씨가 얼마나 애썼는지 책의 서문에 잘 나와 있다. 세상을 향해 두꺼운 벽을 쌓고 살던 배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인 친구부부를 동원해 일주일을 설득한 끝에 겨우 대면할 수 있었다. 묻혀버린 진실을 발굴하려는 의지 없이는 안될 일이었다. ◆며칠 전 배 할머니가 끌려갔던 오키나와 도카시키(도가부)섬에 한국인위안부 위령비가 세워진다는 소식이 있었다. 91년 재일동포 영화감독 박수남씨가 제작한 기록영화 「아리랑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이 맺은 결실이다. 선대의 만행이 부끄러워진 일인들이 배 할머니의 원혼을 달래 주자고 모금운동을 벌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위령비 건립문제가 거론되다가 잊혀진지 오래다. 배 할머니의 유골은 아직도 오키나와의 한 사찰에 방치돼 죽어서도 망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사와 정대협의 위안부 모금운동이 한 민족된 도리를 일깨우는 나팔소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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