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에서는 「파퐁 재판」에 온통 국민의 이목이 쏠려있다. 2차대전중 프랑스에 세워진 나치괴뢰정부(비시정부)에서 치안담당 고위관리였던 모리스 파퐁(87)이 당시 유대인 1,500여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데 「적극적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가리자는 것이 이 재판의 목적이다.이번 재판은 2차대전 전범에 대한 지구상의 마지막 재판이 될 것이라는 기록적 의미에 더해 비시정부의 민간 직업관료에 대한 전무후무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민감한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앞서 폴 투비에, 르네 부스케 등에 대한 전범재판이 있었으나 이들은 각각 민병대장 경찰총장으로 순수한 직업관료는 아니었다.
이런 인물을 사법 심판대에 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칫 국가나 정부에 대한 역사적 단죄로 확대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그들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어하는 2차대전중 비시정부의 나치협력 대목에 법의 확인도장이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국가의 「집단적 유죄」라는 컴플렉스까지도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81년 파퐁의 전시 행적에 대한 매스컴의 첫 폭로와 이후 유대인 희생자 가족들의 고발 및 검찰의 정식기소에도 불구하고 법원당국이 10여년동안이나 재판회부 여부를 결정짓지 못한채 망설였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프랑스는 결국 정도를 택했다. 파퐁 재판을 열어 민족의 치부를 박물관의 화석으로 만들어 공개 전시키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재판에 배심원 9명중 거의 대부분을 35세이하의 젊은이들로 정함으로써 파퐁 재판을 미래의 주역인 젊은 세대들과 함께 공유하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반성에는 마감시한이 없다는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프랑스의 파퐁재판을 보면서 같은 시대 아시아를 침탈했던 일본이 전쟁후 일관해온 태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중 하나라는 일본인들이 프랑스에게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이런 부분이다.<파리>파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