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에겐 실현해야 할 이상이 있었으니까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요즘의 30∼40대가 대학을 다닐 즈음, 싫든 좋든 한번쯤 이 이름을 들어보고 한때 구석방에서 그의 사상과 열정에 탐닉했던 사람도 적잖을 것이다. 지금 쿠바를 비롯한 남미, 그리고 서구의 좌파·진보진영은 체 게바라 추모열기에 휩싸여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볼리비아에서 게릴라투쟁을 이끌던 그가 67년 10월9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혀 39세의 나이로 처형당한지 만 30년. 하지만 그의 삶과 이념을 기려온 사람들에게 올해의 의미는 더욱 각별한 것 같다. 지난 6월말 볼리비아 바예그렌데 근처의 공동묘지에서 정부군이 유기했던 그의 유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쿠바와 아르헨티나인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30년간에 걸친 끈질긴 추적끝에 이뤄낸 「개가」였다.
베레모와 구겨진 군복으로 상징되는 그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때론 영웅으로 섬겨지는 이유는 뭘까. 아르헨티나의 중류가정에서 태어나 의사수업을 받던중 돌연 『질병치료보다 억압된 사회구조와 세계의 모순을 치료하는게 더 시급하다』며 풍찬노숙의 길로 뛰어든 자기헌신 때문에? 카스트로와 함께 59년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후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다시금 아프리카로, 남미로 내달린 투쟁열정 때문에? 혹은 신화나 영웅을 갖지 못하고 혁명과 진보에 대한 전망이 식은 이 시대의 허전함 때문에?
선뜻 하나를 집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열쇠는 그가 투쟁하던 지역의 농민들 집에 예수와 함께 나란히 걸려있던 그의 초상화나, 쿠바의 2인자이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국민들과 똑같이 노동했던 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 우리에게 마르크스 이상으로 「금기」였던 게바라가 오늘날 그가 누볐던 전장과, 영향을 미쳤던 진보지식인들에게서 새롭게 부활한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그가 낯설다. 먼 나라에서 그의 삶이 전설이 된다는 얘기도 왠지 부담스럽다. 분단의 질곡이 지겹도록 우리를 억누르고 있기에.
그러나 그가 지녔던 희망을 반추하는 것마저 금단의 영역이 될 수는 없다. 비록 추구한 이상과 방법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근대사에도 김구, 장준하, 혹은 이름조차 자신과 함께 묻어버린 사람들처럼 「체」와 같은 삶을 산 이들이 적지 않다. 쳇바퀴도는 듯한, 그러다가 이젠 물고 뜯기의 난장판으로 변해버린 대선얘기에 식상하면, 이 10월에 한번쯤 「체」와 같은 사람들이 지녔을 희망과 이상을 얘기해 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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