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가족 유일주의와 배타성/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전문가 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가족 유일주의와 배타성/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전문가 진단)

입력
1997.10.10 00:00
0 0

◎가족바탕 집단주의 지연·학연 병폐초래/배타적 이기심 없앨 사회통합원리 절실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우리 한국인들은 몇천만이 귀성을 감행했다. 이 거국적인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고향을 찾는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설명에 대해 별 저항감은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현상에는 그렇게 흐뭇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명절부터 보기로 하자. 두말 할 나위 없이 설과 추석이 그것이라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날은 무엇을 하자는 날일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자기 가족만이 모이는 날이다. 다시 한번 자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묵시적인 단결을 도모하는 날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가족을 넘어서는 사회공동체나 국가공동체에 대한 배려나 통합원리가 없다는 데에 있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사회라고 한다. 집단주의란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요시되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주의는 가족을 그 시발점으로 한다. 가족이 가장 중요시된다는 말이다. 이때 우리나라의 가족은 유교식의 엄격한 가부장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조선조에서 가족을 바탕으로 통치제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나라에서는 인간관계를 모두 가족의 확대판으로 해석했다. 가령 국가도 「나라 국」자 하나면 그 표현이 충분할 텐데 굳이 「집 가」자를 쓴 것은 국가도 집으로 파악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다음으로 중요한 지연이나 학연도 모두 가족에 바탕을 두고 확대한 것에 불과한데 지면상 이것의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족제도가 지나치게 배타적이라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은 이 가족을 바탕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눈다. 그리고 내집단의 사람들에게는 정을 바탕으로 끝없는 친절을 베풀지만 외집단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 심지어는 증오로 일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은 모르는 사람을 모두 원수로 취급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집단배타감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상 「우리」만 찾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우리주의(Weism)는 대단하다. 사회 전체에 대한 고려는 없고 그저 항상 우리끼리만 살자고 한다. 이것이 극명하게 표현된 것은 아마도 「우리가 남이가」하는 구호일 게다. 이른바 심정적 한 통속이 되는 것이다. 우리끼리는 무조건 다 봐주고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런 우리주의에 바탕을 둔 가족이기주의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온 나라를 다 말아먹을 지경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나는 항상 「내새끼 유일주의」에 망가지는 교육환경을 든다. 공교육비보다 사교육비가 더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학교시설이 암만 낙후되어도 그 돈을 공공교육기관에 투자해 모두가 같이 혜택을 보기보다는 내새끼만 가르쳐 좋은 대학에 보내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가족을 넘어서는 사회통합원리가 없다. 그러니 산업화에 따른 도시산업사회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불특정 타자들과 매일 매일을 살게 된 지금 공중윤리가 엉망일 수 밖에 없다. 사실 한 동네 안에서 아는 사람끼리만 살았던 전통사회에서는 공중질서라는게 필요없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인들은 남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는 원색적인 민족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없다. 월드컵 축구예선을 관전한 어떤 외국인은 이렇게 지적했다고 한다. 너희 한국인들은 축구 응원할 때에는 그렇게 「우리 우리」를 부르짖더니 경기가 끝나고 차를 빼서 집에 갈 때는 왜 그렇게 질서를 못지키고 서로에 대한 배려를 못하냐고 말이다.

한국인이 공동체의식을 갖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축제적인 (종교)의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가족이 배타적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마을에 동제라 불리는 마을굿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기껏해야 개천절이나 광복절이 있는데 이 날들은 국립극장에서 관리들이 하는 기념식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 공휴일로 전락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가족이나 자기 소집단의 이익 밖에는 모르면서 광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한국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