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방패이자 ‘최대경제집단’ 역할북한군(조선 인민군)은 김정일 정권을 힘으로 지탱하는 버팀목일뿐 아니라 경제난을 비롯한 작금의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춘 유일한 집단이다.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전이되지 않은 것도 중간에 군이라는 강력한 무력집단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올해 4·25 군 창건행사때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이며 당』이라고 주장했으며 김일성 사후 대부분 행사를 군부대에 할애하고 대대적 승진인사를 단행하는 등 군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했다. 지금까지 김정일의 육성이 공개된 것은 92년 군창건 60주년 열병식때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한 단 한차례로 군행사에서였다. 따라서 북한군은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 후 바로 충성을 다짐하고 종전의 막강한 위상을 계속 유지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당국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군이 단순한 무력집단 차원을 넘어 과연 경제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역할 전환의 가능성이다. 김정일과 군은 앞으로 민간경제 발전을 위해 군 경제의 축소를 감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또는 기존의 「군사·경제 병진정책」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군을 경제 개방에 동참시켜 군이 개방의 과실을 직접 따먹게 하는 반대의 방향설정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군에서도 경제난에 따른 기름 부족, 총기 유출과 뇌물 수수 등의 각종 사건으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우선 군전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군수 경제를 축소해 일반경제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논리는 92년 부총리였던 김달현이 제기했었다. 김달현은 군 자원의 30%를 민수분야에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대내외 정세에 무지하고 사상적으로 해이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철직됐다.
김달현의 자본주의식 논리가 북한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은데에는 지금 북한을 먹여 살리는 것은 오히려 군이라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금까지 군은 미사일 수출로 한 해에 수억달러를 챙기고 핵무기 개발 위협으로 50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를 얻었다. 생화학 무기도 유력한 대서방 협상 카드다. 정무원이 「푼돈」을 모으는 동안 군은 「목돈」을 벌어들였던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군경제를 축소해 사기를 떨어뜨리려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남포·원산 개방 등 투자촉진 조치를 취할 때에는 군을 경제 현장에 투입, 자본주의 풍조 유입을 효과적으로 통제·관리하고 군이 그 수익까지 직접 챙기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북한군은 전부터 금강산댐 등 대형사업의 선봉에 섰던 유력 경제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식통들은 북한군이 이미 평북·자강·양강·함북 등 접경 지대를 군단별로 나눠 국경시장과 집단농장을 운영하고 적극적으로 대외무역에 나서고 있다고 전한다. 또 김정일은 지난 4월 「군대가 책임지고 농사를 지을데 대하여」라는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 일선 농장 관리를 군이 책임지도록 했다. 북한에서는 지난해부터 잉여 농산물의 자율 처분권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평양 지도부도 군마저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개방의 수위조절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군 위상 정립에서도 관건인 셈이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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