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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문과 사립문/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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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문과 사립문/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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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해외 무력개입의 길을 터놓은 미 일 새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전문을 읽고난 느낌은 모호하면서도 편리하게 돼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호함과 편리함을 사랑하고 단결심이 강한 일본사람들의 성품의 바탕을 더듬을 수 있는 일본주택의 「장지문」 같다.일본집은 내부 칸막이가 있다고도, 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아파트 조차도 그렇다. 칸막이가 있다고 해도 장지문이 고작이다. 이 문도 편의 및 필요에 따라 떼어 내게 되어 있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여름철에 대비한 지혜다. 이를 제거하면 집안이 한 공간이 돼 시원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는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장지문을 달아 칸막이를 해도 엷어 옆방의 이야기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이 때문에 부부관계 조차 마음대로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한국주재원들 사이에 나돈다. 아이들을 피해 러브호텔을 사용했다는 주재원도 있을 정도다.

비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족구성원은 가족전체의 화합을 위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의 화합을 해치지 않기 위해 말을 절제하고 상대를 자극하는 단도직입적인 표현대신 모호하게 말을 돌려서 한다. 일본사람들의 강한 단결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와 달리 「예스」와 「노」가 불분명하고 「검토하겠다」는 등 적당히 얼버무리는 일본사람들의 말흐림이 이를 뒷받침한다. 「검토하겠다」는 것을 승낙한 것으로 믿고 일을 추진하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골탕을 먹은 국가나 회사 및 개인의 수많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는 무언가 성과가 있는 것 같으나 귀국 비행기속에서 곰곰이 생각하면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80년대 비관세장벽이 높은 일본시장의 벽을 허물기 위해 분투했던 미국통상대표부(USTR)의 한 대표의 한탄이 이를 사실적으로 말해준다.

미일의 새 방위협력지침도 이와 똑같다. 모호함 속에 해석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새로운 안보질서 확립이란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지만 너무도 투명성이 부족하다.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이를 설명하기도 했으나 진의는 여전히 안개속에 있다.

투명하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본 연립여당인 3당조차도 새 방위지침의 「주변유사」란 개념을 둘러싸고 의견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정도다. 주변국에 대한 배려로 이같은 지침이 마련됐을지 몰라도 문화배경이 다른 사람이나 나라가 이를 상대해야 할 경우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헌법까지도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나라다. 여기에서 소위 「해석개헌」이란 희한한 용어까지 생겨났다. 헌법의 제멋에 겨운 해석에 따라 자위대가 탄생했고 일본의 해외 무력개입의 근거를 마련한 미일 새 방위협력지침의 틀이 짜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모호함과 편리함이 바탕을 이루는 일본사람의 태도를 잘못 읽었다가는 그에 따른 아픔이 배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말에 우리는 일본정부와의 외교에서 이를 수없이 경험했고, 결국 나라를 잃는 쓰라림까지 맛보아야 했다.

벌써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빼놓고 미국 중국과 안보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동북아 안보질서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자칫 100년전처럼 우리의 안보문제를 우리가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주변유사」란 모호함의 무서움이 있다. 「주변」은 일반적으로 지리적인 개념인데도 이를 상황적 개념으로 흐릿하게 편의대로 해석하는 일본정부의 자세는 앞으로 대일관계에서 그때 그때 짚고 넘어가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를 등한히하면 아무리 98프랑스 월드컵 축구예선에서 일본에 멋진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양국관계에서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미 중 일의 역학관계로 인한 소용돌이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짙어지고만 있다. 이를 뚫고 안보항해를 해야하는 우리는 의심스러운 사람은 집안에 들이지 않고 아예 문 밖에서부터 경계하는 「사립문의 지혜」로라도 「장지문의 지혜」에 대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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