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회 통일외무위의 주미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장. 서울과의 거리로 보나 다루는 주제의 성격으로 보나 국내의 복잡한 대선문제는 등장하지 않을 법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대선은 역시 중요한 사안이었다.줄곧 여권에 몸담고 있다 현정권이 들어선 뒤 팽당한 대표적 인물인 박준규 자민련의원. 박의원은 2년전 설움겪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하버드대에서 교포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게 되어있던 박의원은 행사 1주일전 갑자기 자신의 연설계획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밝혔다.
『다음 정권에서는 이런 유치한 일을 안했으면 좋겠다』며 넌지시 해외까지 국내정치를 연장시키는 정부의 행동을 질책한 박의원은 이어 『이번 선거에서 대사관은 손을 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주문했다. 박의원은 『선거때만 되면 미국에 줄을 대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대사관은 절대로 이런 사대주의 정치인의 앞잡이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외무장관출신의 이동원 국민회의의원은 박의원이 여야를 싸잡아 공격한 것에 대해 『박의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우리당은 미국의 협조같은 것을 결코 생각하지도 않고있다』고 말했다.
대선에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의원들은 그러나 선거와 관련한 대북문제에 대해선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김근태 국민회의의원은 『북한은 그동안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KAL기폭파, 판문점 무장군인 출몰사건 등으로 악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그런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미국을 통해 경고메시지를 전달할 용의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박의원도 『지난해 총선당시 북한이 판문점에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나도 떨어질 뻔 했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북한에 엄중한 경고를 할 뿐 아니라 미국측에 그같은 정보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건우 주미 대사는 대선후보들의 미국접촉여부에 대해선 『지금까지는 전혀 없다』고 못박고 『대북메시지는 곧 방북하는 하원의원에게 주지시킬 계획』이라고 답했다.
정치인들의 미국 사대주의는 이번 대선에선 기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국정감사장에서 여전히 그 기우가 논의되고 나아가 공정한 선거를 위해선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미국은 우리의 대선과 관련이 없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본다.<워싱턴>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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