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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고락 함께한 한세기”/숭실대 오늘 개교 10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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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고락 함께한 한세기”/숭실대 오늘 개교 100돌

입력
199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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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분단사속 16년간 폐교 아픔도/조만식·안익태·황순원 선생 등 동량 배출/평양 보통강변 자갈 실향민 배포 등 기념행사10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숭실대는 숨가빴던 지난 1세기 한민족의 역사와 고락을 함께 해왔다.

구한말 문호개방기였던 1897년 미국 선교사 배위량(윌리엄 베어드·1862∼1931년) 박사와 평양 주민들이 대동강 지류인 보통강변 신양리에 숭실학당을 세운 것이 숭실대의 기원이다. 이때는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광무원년이었다. 숭실학당은 1905년 평양주민들의 기탁금 6,000원으로 숭실학교 대학부를 설립,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대학교육 기관으로 거듭난다. 당시 독립협회 연간 모금액이 5,000여원이었던 점에 비춰 대단한 액수였다.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지경에 처한 1905년 을사조약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을 비롯, 숭실학원은 조선국민회 결성, 105인 사건, 3·1운동 등 독립투쟁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3·1운동 지도자 33인중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숭실학원에 몸담고 있던 김창준 선생이 참여했다.

숭실학원은 1938년 당시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거부, 폐교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숭실대는 폐교 16년 뒤인 54년 현재의 자리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다시 문을 열게 됐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와중에서 고향인 평양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숭실대는 지금까지 「진리와 봉사」라는 건학이념 아래 3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와 분단사속에서 1세기를 보낸 숭실대학은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 선생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을 비롯, 민족의 동량들을 길러냈다. 양주동 이효석 황순원 등 문화계의 걸출한 인물들도 다수 배출했다.

숭실대학은 산업화의 시기에도 민족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69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산학과를 설치, 일찍이 정보화시대를 예고했고 84년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 대학원도 세우는 등 실용학문의 도입에 앞장서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92년 교육부 선정 수도권 「톱(Top)10 대학」에 선정됐고 96년 교육부 교육개혁 평가에선 「세계화·정보화 우수대학」으로도 뽑혔다.

이 대학 어윤배 총장은 『지난 100년의 역사에 안주하지 않고 정보화와 문화예술에 역점을 두고 21세기 신전통을 만들어 가겠다』며 『앞으로도 하나님과 민족 앞에 부끄러움 없는 떳떳한 대학이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숭실대는 100주년을 맞아 통일염원과 모교회복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평양 옛학교터 인근 보통강변에서 채취한 자갈 100여톤을 들여와 동문 실향민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정문 기둥에도 붙이기로 했다.

숭실대는 10일 문을 여는 한경직 목사 기념관에서의 기념식을 시작으로 이달말까지 베어드 박사 흉상 제막식, 조만식 선생의 일생을 재조명하는 추모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윤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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