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비롯 주요직위 정·관계인사가 독차지/연금공단 부장이상은 86.8%가 ‘낙하산’/업무도 잘 모르면서 설쳐대면 더 골치『낙하산이라도 좋다.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달라』 낙하산 인사에 심하게 시달려 왔던 정부산하기관 관계자들의 작은 소망이다.
정부산하기관의 장을 비롯한 주요 직위에는 정·관계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온다. 기관 내부에서 「정치 건달」로 불리는 이들은 비록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더라도 조직의 활성화를 저해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문외한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낙하산」을 타고 온 사람들의 행태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업무에 대해 전혀 몰라 조용히 도장만 찍고 있는 부류와 업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고집을 피우는 부류이다.
후자의 위험이 더하다. 이들은 정부나 임명권자의 의지를 정책에 반영하려 하고 그러다 보면 사회 공익에 봉사해야 할 산하기관이 정치논리에 휘둘린다. 결국 공공성을 살리지는 못하고 비효율적 운용만 더욱 심각하게 한다. 특히 이들의 판단 잘못으로 기관의 목표 설정 자체가 어긋나는 경우. 사업의 방향이 틀어지고 아랫사람들이 일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낙하산 인사가 비리의 사슬로 엮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추천해 준 「윗분」에게 뭔가를 보답하기 위해 이권에 개입하거나 비리에 연루되기 쉽다. 군사정권 시절 몇몇 주요 산하기관은 공공연한 정치자금줄로 알려졌다.
낙하산 인사는 주로 각 기관의 이사장이나 사장, 감사 고문 이사 등의 자리를 두고 행해진다. 이렇게 「배치」된 사람들에게 들어 가는 국민의 돈도 만만찮다. 한 공단의 상임고문인 전직 국회의원은 월 기본급 240만원과 건설 활동비 200만원, 기밀비 120만원 등 560만원과 950%의 상여금 등 연 9,00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정부 산하기관내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국민의 혈세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홍신 의원이 보건복지부 산하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 「의료보험연합회」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3개 기관의 부장급 이상의 낙하산 인사 여부를 조사한 결과는 가관이다. 407명중 55%인 224명이 낙하산 인사로 자리를 차지했고 이중 연금관리공단은 무려 86.8%, 의료보험관리공단은 78.1%, 의료보험연합회는 49.3%였다.
이들은 대개 청와대나 군·경찰, 관변단체, 대통령자문기구, 정부부처, 여당 출신 등이었다. 다른 산하단체도 거의 비슷한 실정이다.
정부투자기관노동조합연맹의 한 관계자는 『정부투자기관의 경우 사장과 감사 등의 자리는 거의 다 낙하산 인사라고 보면 틀림없다』며 『재투자기관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부산하기관이 긁어도 긁어도 닳지 않는 「철밥통」과 같다는 말을 듣게 된 것도 이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정부산하기관 종사자들의 항변/정부간섭 심하고 저임·인사적체/“안팎으로 얻어맞아요”
정부산하기관 종사자들은 외부 입김이 너무 거세다는 데 한결 같이 불만을 표한다. 『조직의 자율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외부 통제 라인이 많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
사업계획 조직개편 인사 등 「경영마인드」가 필요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데 일일이 주무 부처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자율성이 없다. 예산은 재정경제원 심의실을 거쳐야 한다. 문민정부 들어서도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는 등 비공식적인 「윗선」의 간섭이 여전했다.
이제는 「전통」처럼 돼 버린 낙하산 인사도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다. 최고경영자로서의 철학보다는 보신주의에 익숙한 「정치 관료」가 위의 눈치를 보면서 벌이는 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윤보다는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기업의 위상도 경영 지표를 떨어 뜨린다. 시장 원리를 그대로 따를 수만 없는 공기업의 「딜레마」가 효율적인 정책 수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 도성환위원장은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민자고속도로의 예를 들어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필연적이라고 설명했다. 거리가 같아도 민자 고속도로 통행요금이 도로공사가 건설한 고속도로 통행료의 3∼5배인 것만 봐도 도공의 운영이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 『공기업의 경영지표에는 재화 수급과 가격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어요. 가격·물량 등을 결정하는 데 시장원리보다 는 정책을 우선해야지요. 사기업에 비해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단순한 수치비교를 들이 대서는 안됩니다』
낮은 처우, 심한 인사적체 등도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 뜨린다. 인적 자원의 질이 떨어져 조직에 활기를 불어 넣기가 어렵다는 것. 80년대 초반만 해도 공기업은 근무 여건이 좋고 임금 수준도 사기업에 뒤지지 않는 1등 직장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번번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묶여 임금인상률이 공무원과 비슷한 수준(3∼5%)으로 묶였다. 이 바람에 심한 경우 급여 수준이 유사업종 사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가 하면 학력이나 근속기간을 감안할 때 공무원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는 주장이다.
인사적체도 큰 문제. 80년대 이후 조직은 크게 확대됐으나 더 이상 사업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의 기관이 승진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연맹 권순정 부위원장은 심하면 입사년도는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과장 승진에서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예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나마 장점으로 지적돼 온 고용의 안정성도 노동법 개정과 명예퇴직 바람의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밖에서 얻어맞고 안에서 터진다』는 정부산하기관 종사자들의 푸념이 예사롭지만은 않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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