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핵심조사대상” 파문 확대 긴장감『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67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신한국당의 폭로로 금융계가 또다시 비자금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신한국당이 김총재 비자금관리인으로 지목한 이형택씨가 시중은행 현직고위간부(동화은행 영업1본부장)이고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한 내사방침을 밝힘에 따라 금융권은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사건이후 2년여만에 비자금파문이 재연되지 않을까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계는 신한국당의 폭로내용과 관계없이 금융실명제하에서도 비자금과 비실명계좌의 존재는 대체로 시인하고 있다. 한 은행인사는 『비자금과 가명·차명·도명계좌는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노출을 기피하는 검은돈(비자금)은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이 돈은 차명 또는 도명계좌의 형태로 금융기관에 예치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자금과 차·도명계좌를 연결하는 것은 금융기관이다. 생리상 거액예금의 유혹에 끝없이 노출되는 금융기관은 「큰손 고객」의 안전한 자금관리를 위해 가명·차명·도명계좌를 직접 만들고 또 큰손의 요구에 대비, 미리 여러개의 비실명계좌를 「준비」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비실명계좌를 만드는 방법은 ▲사전동의하에 친지 등의 이름을 빌리는 합의차명 ▲동의없이 혹은 휴면계좌 등을 이용하는 도명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가명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금융실명제하에서 비실명계좌의 운영은 제한이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는게 금융계의 설명이다. 더구나 차명은 실명의 일종이기 때문에 적발되어도 처벌에 한계가 있다.
한 은행간부는 『지점장 생활을 하다보면 노출을 기피하는 큰손이나 사채업자들로부터 별 제의를 다 받게 된다』며 『아직도 고객관리차원에서 차·도명계좌를 운영하는 관행은 남아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이번 파문과 관련, 대체로 세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는 과연 이형택씨가 365개에 달하는 비실명계좌를 관리했는지 여부다. 「관리용」계좌치고는 좀 많지만 관행상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는 어렵다는게 은행권 반응이다.
두번째는 이씨가 비실명계좌를 운용해온게 사실일 경우 이것이 과연 김총재의 것이었냐는 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6년이상 지점장생활을 해온 이씨의 통상적인 「고객관리용」계좌일 수도 있다.
세번째 문제는 신한국당의 사실확인과정이다. 폭로내용이 거래자 거래일자 거래금액 거래형태 등 너무도 자세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93년 8월12일이후엔 내용을 특정시킨 영장없이는 고객거래내용을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한국당의 이날 폭로내용은 단순한 제보 차원을 넘어 사정당국의 협조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금융계는 제기하고 있다.
이같은 궁금점은 결국 사법당국의 조사없이는 풀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사실확인과정에서 금융기관은 어차피 핵심조사대상이 될 수 밖에 없어 금융계는 이번 비자금파문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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