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삶이 넌더리날때…/이념이 허울로 남은 90년대/자본이 주인이 된 시대 진정한 생의 궤도는…「그러면 그들 중 두셋은 인생을 좀 진지하게 사는 게 낫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충고한다. 나는 다시 대답한다. 진지하게 사는 것에 넌더리가 난다고」.
중편 「몽유기」에서 작가 김이태(32)씨는 이제 『진지하게 사는 것에 넌더리가 난다』고 말한다. 김씨는 수없이(?) 등장한 90년대의 여성작가 중에서도 참 특이한 존재다. 95년 등단한 후 발표한 작품을 모은 그의 첫 중·단편집 「궤도를 이탈한 별」(민음사 발행)은 제목처럼 상궤를 떠난 것같은 그의 편력, 세상에 대한 시선이 담긴 작품집이다.
그 시선은 90년대적 현실에 절망한 80년대 후반 학번 세대의 정신적 갈등과 방황의 궤적(문학평론가 장은수)이기도 하고, 「떠돎」이라는 천형을 낙인으로 지니고 있는 아웃사이더의 그것(문학평론가 김미현)이기도 하다. 그 절망과 떠돎은 곧 지난 시대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꿈꾸었음직한 어떤 「낙원에의 열망」이 이제 영원히 사라졌음을 깨달았을 때 비롯되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 젊음이 확고한 이념으로 무장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론의 대가로 불리던 박사과정 한 선배로부터 『너도 좀 의미있는 생을 살아야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듣고, 바쁘게 감방을 들락거리던 운동권이었다. 이제는 변호사가 된 첫사랑의 남자에게서는 『너는 뼛속까지 개인주의적이라 안 돼』라는 모멸을 당하던 젊음이다. 그런 선배와 남자가 「허울」로만 남은 90년대, 이념 대신 가공할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정한 생의 궤도는 어디에 있는가?, 김씨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그해 나는 장안의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되었다」로 시작해 우리 사회 유명인물들만 인터뷰하는 잡지사 기자의 시선을 통해 본 90년대적 삶을 그린 「몽유기」, 「스타카토로 현을 퉁기는듯 탕탕한 삶」을 찾아 재미교포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온 여성이 록커로서 살아가게 되는 곡절을 그린 표제작, 펠라치오로 맛본 정액의 냄새 때문에 육식주의자에서 채식주의자로 돌변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식성」, 논술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성연애자 철학박사의 파괴되어 가는 삶의 이야기 「독신」. 김씨의 작품들은 그 내용뿐 아니라 찐득한 하드록 음악을 닮은 문체로 읽는 이들을 불편하고도 섬뜩하게 만든다. 만나보면 작가적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는듯한 김씨의 손에서는 빨간 말보로 담배가 떨어질 사이가 없다. 김씨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가 자퇴한 뒤 서울대 철학과를 다녔다. 90년부터 외국을 떠돌며 페루, 미국을 거쳐 지금은 일본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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