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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텍사스/조재용 정치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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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텍사스/조재용 정치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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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의 자부심은 미국의 여느 주보다 유별나다. 멕시코로부터 독립해 10년간 독립공화국을 고집하던 텍사스는 1845년에야 뒤늦게 합중국에 동참했다. 당시 이를 위한 주민투표를 앞두고 벌어진 찬반 격론은 지금까지 텍사스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얘기된다. 스스로를 「텍산」(Texan)으로 부르며 지금도 「텍사스를 건드리지 마라」는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그들이다. 우리식 표현으로 「텍사스 정서」라고 할만한 특유의 지역특성을 갖고 있는 셈인데 이 정서의 한가운데에는 「독립 텍사스」에 대한 향수가 알알이 배어있다.텍사스 정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연방정부에 대한 배타적 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역주의는 미국에서는 매우 일반화한 현상이다. 연방정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자는 극우 민병대의 극단적 발상 등은 현대 「미국병」으로 치부해 버릴만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여기에 바탕을 둔 주민자치를 존중하는 건국철학과도 맥이 닿아있는게 미국의 지역주의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의 역학과 긴장관계가 정책논쟁을 유발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노선 차이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중 어느 쪽의 영역을 더 인정하는가로 구분할 때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미국의 지역주의는 건국원리에 뿌리를 둔 건전한 사조라고 할 만하다.

지역주의는 우리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그것과는 용어를 달리해야 할 만큼 배경과 내용이 판이하다는 점을 알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의 지역주의가 항상 선거에서 극도의 폐악을 떨쳐온 것도 누구나 잘 안다. 예전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가 누그러 진듯한 현상은 언뜻 다행스럽게 보인다. 양김의 한 축이 무너져 있는데다 여당 후보와 그 진영에 영남색이 탈색돼 있는 것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고질적인 지역주의의 악취가 또 요란한 극성을 부렸다면 선거는 얼마나 더 추악해졌을까.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각 후보들이 더 잰 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은 또다른 추한 역설이다. 후보가 없어 무주공산이라는 영남은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선점경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어지러운 지역공약, 앞서고 뒤서는 각 진영의 방문공세,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느닷없는 찬사 등이 이번 선거만의 특징적 단면을 드러낸다. 무엇이든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정치편의주의의 악습이 또 한번 확인되는 무대가 요즘의 영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지역주의를 버리기 힘든 우리의 한계를 다시 느끼게 한다. 「득표 지상주의」가 현실정치의 냉정함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정치현실이 답답하기는 여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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