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관리공단/‘내 임기만 채우면 그만’ 경영진 복지부동 극심/주먹구구 기금운영 파행·불합리 인사에 돈사고 나도 ‘모른체’/국민재산이 새나간다기금 운용의 비효율성, 인사 비리 등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국민연금관리공단.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의 말은 정부 산하기관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내부에 개혁 의지가 있어도 위에서 움직이질 않아요. 오히려 곪은 곳을 지적하면 칼만 맞는 형편이죠. 낙하산 이사장이나 임원은 모두 임기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에요. 직원들은 아예 체념하는 분위기입니다. 승진이나 신규채용 등에 전혀 원칙이 없으니 열심히 일하자는 생각도 없어요. 국민이 낸 기금을 운용하는 큰 일을 맡고 있으면서 이렇게 엉터리여서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정부산하기관에 비해 평균 2급씩 낮은 급여 수준(97년 노동조합 자체조사)과 3∼4배에 달하는 업무량에 시달리는 고달픈 조직이다. 그는 직원 개개인의 불만과 업무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였지만 조직 개선의 길이 아득해 희망마저 잃고 산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국민연금관리공단 감사로 부임한 뒤 조직의 부패와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다가 최근 사임한 모인사의 「실패」를 예로 들었다. 『자체 감사에서 지방 모지부출장소의 공공자금 횡령 혐의가 포착됐다나요. 이사장으로부터 「감사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경고장이 감사실로 내려왔고 문제의 출장소에도 「감사에 응하면 처벌하겠다」는 경고장이 날아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말이나 됩니까』 결국 그 감사는 자리를 내놓았고 공단 내부에서는 『너무 튀다가 밀려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인사문제도 파행 투성이다. 조직이 생긴 지 10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4번 밖에 공개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 설립 당시와 비교할 때 공채로 충원된 인원은 300여명에 지나지 않지만 특채 인원이 5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파헤쳐진 인사 비리의 내용도 충격적이다. 95년 1급 승진시험에서 S(48)씨가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관에게 『두세 개 틀린 것으로 채점하라』고 지시해 1순위로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이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의 자녀나 친척이 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나마 애교에 속한다. 복지부 임시 직원이 난데없이 공단 4급직원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조직의 불합리성은 부실한 사업 운영과 직결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95년에 63억원, 지난해에는 42억원의 예산 불용액을 발생시켰다. 반면 직원들은 지난해 시작된 국민연금 농어촌 확대사업에서 출장비가 모자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부적절한 기금운용으로 인한 자금 고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10년이면 누적금이 고갈돼 연금 지급이 불가능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리하게 선심성 정책을 입안하면서부터 시작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하나 둘 그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부정·부패가 「국민의 돈」이 새는 1차적 원인일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대전엑스포 기념재단/급여·후생비 23억원에 사업비는 고작 4억원/적정인원 3배 근무/감사원 지적 받자 ‘과학소년단’ 신설/직원전보 눈가림 축소
대전엑스포 기념재단은 93년 열렸던 대전엑스포를 기념하고 과학공원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통상산업부 산하기관. 과학공원내 18개 전시관과 놀이시설, 장내 교통시설 등을 9개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이사장 사무총장 외에 2부 1실 8과로 구성된 정원 59명의 기관으로 산하기관 치고는 비교적 작은 규모다. 그러나 여기서도 거품 조직, 방만한 운영, 낙하산 인사 등 산하단체의 고질적인 병폐를 찾아 볼 수 있다.
93년 환경설계정책연구원이 대전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재단설립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기념재단의 적정인원은 20명 내외였다. 그러나 93년 12월 출범한 기념재단은 인원 79명, 본부장 3명을 포함한 3부 12과의 조직으로 선을 보여 연구원이 제시한 적정규모를 크게 넘어 섰다. 통상산업부 등 중앙부처에서 박람회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갔던 인력을 흡수한 결과였다. 조직 비대를 감사원이 지적하자 재단은 조직을 2부 1실 8과로, 정원을 59명으로 줄이는 대신 100억원의 기금과 10여명의 직원을 파견해 엑스포과학소년단을 설립했다. 전형적인 「눈가리고 아웅」식이었다. 출범 당시 542억원이었던 기금규모는 이자수입 축적으로 오히려 75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념재단이 꿈돌이 글짓기, 해외교포학생 초청, 엑스포기념행사, 기념관 운영 등 사업비로 쓴 돈은 겨우 4억4,000여만원. 반면 연봉 1억원에 가까운 이사장과 사무총장 급여를 포함한 인건비와 후생비 등에 들어간 돈이 순지출의 47.3%인 23억6,000만원에 달했다. 직원 한사람에 평균 4,000여만원이 지불된 셈이다.
시설·자산 관리(8억8,000만원)와 총무(10억원) 대외협력(1억8,000만원), 기획(1억1,000만원) 등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갔지만 『재단 건물과 일부 전기 시설을 제외하면 공원관리를 위탁업체들이 맡고 있어 관리비도 과다계상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학공원 한 위탁업체 관계자는 『재단측은 재단의 기능이 재산관리와 엑스포 성과를 홍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일에 750억원의 기금과 60명에 이르는 직원이 필요한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과학공원의 완전 민영화 방침이 발표됐지만 기념재단은 여전히 살아 남을 전망이다. 재단 관계자는 『엑스포 사업 홍보와 대전 과학축제 등 지역사업을 계속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원을 민영화하는 마당에 효과가 의심스러운 사업을 위해 다시 수백억의 기금과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커도 이만 저만이 아니고 방만한 운영을 가릴래야 가릴 수 없는 산하기관이 기념재단 하나뿐일까.<배성규 기자>배성규>
◎이렇게 생각한다/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산하기관 숫자의 많고적음이 아니라 기능중복이 진짜 큰 문제
정부산하기관 정비가 정부조직 개혁의 주요 과제로 부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총무처가 정비 의사를 밝힌 것만도 수차례에 이른다.
그런데도 산하기관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만도 한국정보보호센터, 설비공사공제조합,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의 단체가 신설됐다. 이런 추세는 「작은 정부」라는 세계적인 조류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 더욱 뚜렷해 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커지고 있으나 민간부문으로 완전히 이관하기 어려운 공공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정부기관도, 민간부문도 아닌 제3의 형태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 필요해 진다.
따라서 문제는 산하기관의 수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기관이 신설되고 또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이다.
우선 정부기관의 기능 이관을 전제로 단체가 신설돼야 하는데 부처 기능은 그대로 둔 채 산하기관만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능이 중복되는 문제가 있다. 가령 통상산업부와 중소기업청에 중소기업 지원 기능과 조직이 있는데도 비슷한 기능의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 특별지방행정기관인 지방중소기업청과 지방중소기업사무소를 따로 두고 있다. 심지어 자치단체에도 중소기업 지원조직이 있다.
산하기관의 기능 중복도 문제이다. 부처마다 독립된 출연연구소와 공무원 교육원을 두고 있는 것이 그런 예이다. 기능중복은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조직정비의 1차 과제는 정부기관(중앙정부와 지방정부)과 산하기관, 기관과 기관간의 기능 중복 여부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유사 기능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산하기관을 경쟁적으로 두는 것은 상급 부처의 이익과 관계가 있다. 퇴임 공무원들의 뒷일을 보장해 주고 산하기관 재정을 정책사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낙하산 인사」 창구로 산하기관을 활용하기도 한다.
산하기관의 운영은 신축성이 부여돼 효율성·채산성은 증진시킬 수 있으나 국민과 의회의 통제에서 멀어짐으로써 공공성·책임성의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산하기관은 정부보다 훨씬 많은 153조원의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감시, 통제는 훨씬 적게 받는다. 특히 정부가 예산 외로 운영하는 기금을 관리하는 기관의 문제가 심각하다. 기금관리 기관은 96년 현재 36개인데 어느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이런 점에서 산하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전문가를 관리자로 영입해 책임의식을 갖고 조직의 생산성과 공공성을 높여 제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게 정부 개혁의 중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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