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샤 메르세데츠. 한때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파벨 그라초프 전 러시아 국방장관의 별명이다.독일의 최고급 승용차 메르세데츠-벤츠를 워낙 좋아하는 그에게 한 언론인이 파벨의 애칭인 파샤에다 메르세데츠를 붙여 만들어준 것이다.
이 별칭은 나름대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라초프 전 장관이 재임시 사병들의 복지향상용으로 배정된 예산을 빼돌려 벤츠를 구입한 것을 질타하는 의미다. 또 군최고지도부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당사자인 그라초프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 1차투표 직후 알렉산데르 레베드 전 국가안보위서기에게 밀려났지만 여전히 크렘린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잊을 만하면 재기설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그의 재기 의욕을 꺾어 버리기라도 하듯 그라초프 전 장관이 타던 벤츠승용차가 지난달 30일 모스크바 교외 「아프토가란트」 경매시장에 나왔다.
옐친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외제 승용차 사용금지를 지시함에 따라 국방부측이 내놓은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이 벤츠를 다른 벤츠와 구별해 「메르세데츠 파샤」라고 부르며 누가 새주인이 될 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매결과 그라초프 장관이 즐겨탔던 벤츠는 공교롭게도 그와 악연이 깊은 러시아 일간 모스코프스코예 콤스몰레츠지의 바딤 포에글리 기자의 손에 들어갔다. 이 기자는 「파샤 메르세데츠」라는 별명을 지은 장본인이다. 또 동유럽 주둔 소련군의 철수와 관련된 군최고지도부의 비리를 폭로한 것도 그였다.
그라초프 전 장관을 비판하는 기사로 명성을 얻은 그가 「메르세데츠 파샤」마저 손에 넣음으로써 장관을 완전히 KO시켰다는 평이다. 경매과정을 지켜본 국방부측은 너무 싼 값에 팔린 것도 그렇지만, 하필이면 눈엣 가시같은 포에글리 기자냐는 찜찜한 반응이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성역으로 취급되는 우리의 군과 언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메르세데츠 파샤」의 경매다.<모스크바>모스크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