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는 무조건 나쁘다고들 생각한다. 더욱이 집단이기주의는 한국병의 하나로 매도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모두가 이기주의자이기를 그만두지 못하고 곳곳에서 집단이기주의의 작태를 되풀이하고 있는가. 이기주의를 포기하면 무슨 주의자가 되란 말인가.전통사회가 무너질 경우 개인의 출현과 더불어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개인의 존재는 그 원초적인 형태가 바로 이기심의 주체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근세의 철학자 홉스가 창도한 사회계약론은 바로 이기적 개인을 전제로 해서 출발하였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역시 사회발전의 동력으로서 개인의 이기심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각자가 이기심에 의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경우 이를 위해 각자는 또한 상호결합이 불가피하게 된다. 칸트의 말처럼 이기심은 원래 비사교적인 것이지만 그러한 비사교성은 타인과 결합할 경우 「비사교적인 사교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기심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형태로 합리화되고 길들여질 경우 그것이 바로 시민적 덕성의 근간을 이루고 권리의 실질적 내용이 된다. 정당한 이해관계에 대한 요구가 아니고서는 권리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같이 이기심이 악덕이 아니라 덕성으로 간주되는 과정이 근대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진정한 근대화, 현대화를 위한다면 결코 우리는 이기심 그 자체를 매도해서는 안된다.
역사상 우리는 아직 한번도 진정한 개인으로서 살아본 적이 없으며 이는 결국 우리가 아직 한번도 이기심의 주체로서 행세한 적이 없음을 뜻한다. 진솔한 이기심의 표출이 없는 곳에 진정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도 없으며 건전한 시민윤리나 시민의식의 성숙도 기대할 수 없다. 권리나 의무의 체계로서 법체계나 시민윤리는 결국 이기적 개인들간의 신사협정이요 공존의 윤리이며 조정의 원리이다.
우리는 이기심을 억압하거나 전통적 도덕심으로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각자의 이익을 주장하고 그것들이 상충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조정의 원리를 찾아내야 하고 그 조정의 원리가 보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 되게해야 하며 그래서 새로운 윤리의 바탕이 되게해야 한다.
이기심은 포기되거나 억압되어서는 안되고 정면에서 돌파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새로운 조정원리에 따라 이기심을 길들이고 합리적으로 세련화시키는 길만이 근대화, 현대화 이념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기심은 매도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고 정당한 보상과 적절한 충족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을 뿐이다.
다원적인 시민사회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다양한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일차적 과정이며 그 기준이 법체계이며 또한 이는 시민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런 뜻에서 정당한 법체계가 확립되고 법체계의 엄정하고 일관된 시행 즉「법의 지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 있어서는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듯하니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 이기주의가 때로는 집단화를 그 전략으로 채택함으로써 집단이기주의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기주의의 집단화는 일종의 힘의 논리에 의거한 것이다. 이기심의 합리적 충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억압되고 있는 사회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자들이 연대하는 이기심의 집단화가 불가피하다. 이 때 집단이기주의를 무조건 몰아 세우는 측 역시 또다른 집단이기주의인 경우가 흔하다.
흔히 쓰레기나 핵폐기물 하치장 등 혐오시설을 두고 님비(NIMBY)현상으로 표출되는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윽박지르거나 몰아세워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는 인지상정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이에 삿대질하는 자 역시 또 다른 이기주의자나 집단이기주의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님비현상은 성토나 매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응분의 보상원리에 의해서만 잠재울 수 있다.
일본의 어떤 중소도시 시장은 원자핵폐기물 하치장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그 대가로 정부에서 상당한 재정지원을 받아 시의 발전을 크게 앞당긴 공로로 시민에 의해 동상이 세워지고 칭송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이익을 당하는 자들의 불평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기에 앞서 응분의 보상을 통해 이기심을 상호조정하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들의 사회가 최선은 아니나 차선의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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