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처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기록의 보존상태가 엉망인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의 사진과 필름을 표본조사한 결과 7.96%가 변색되거나 곰팡이얼룩, 건조화 등으로 인해 훼손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말라 부스러진 것들은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실제 훼손상태는 더 심각할 것이다.정부기록보존소가 69년 설립된 이후 30년이 돼가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기록물에 대한 수집권리를 명문화한 관계법이 없다. 대통령령인 사무관리규정과 시행규칙, 각 부처의 내규로 행정부만의 자료를 모으는 정도이다. 각종 기록은 분산된 채 산일되고 있으나 기록의 훼손과 절취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자료검색과 열람을 위한 체제도 부실해 연구자나 일반국민이 접근하기 어렵다.
정부기록보존소의 서울본소와 부산지소의 직원 124명중 전문직인 사서직과 연구직은 35명이며 연간 자료수집비는 5,000만원선이라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실정이니 있는 자료도 제대로 보존하기 어렵다. 역대 대통령의 개인적 기록이나 외국에 흩어진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오죽하면 자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정부를 대신해 자료를 모아 주겠다고 지난 7월 국가기록연구재단을 발족시켰겠는가. 기록문제에 대한 여론의 대변, 중요 국가기록의 수집지원과 출간 등을 천명한 이 재단의 출범은 정부로서는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국 등 6개국의 사례조사를 거쳐 내년에나 「정부기록물 관리 및 보존에 관한 법률」(가칭)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외국의 제도에 관한 연구와 자료축적이 돼 있지 않은 사실도 놀랍지만 사례조사에 그렇게 오랜 기간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 입법을 서둘러 국가기록의 체계적 수립·관리와 공개에 관한 규정을 명시하고 정부기록보존소의 인력과 예산을 보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의 자료와 기록을 소홀히 하는 것은 역사를 방기하는 일이다.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자랑스러워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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