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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축구처럼만 하면(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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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축구처럼만 하면(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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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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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잠실주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라는 중동의 작은 나라와의 축구시합을 관전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특권이었다고 믿는다. 입장권 3만장이 판매를 개시하고 10분만에 매진되었다는 사실만 봐도 내가 구한 그 표가 결코 쉽게 구할 수 없는 표였음을 알 수 있었다.7시가 다되어 경기장에 들어섰는데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주경기장의 스타디움은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미 그 열기가 대단하였다. 크고 작은 태극기를 들고 온 사람들과 빨간 티셔츠를 입은 응원단이 시각적으로 이미 우리를 흥분시켜 괴로운 인생사를 몽땅 잊고 다만 위대한 우리들 조국의 승리를 갈구하는 마음 뿐이었다.

근 2시간 동안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우리 선수들이 공을 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할 때에는 관중의 환호성이 잠실의 밤하늘을 흔들었고 우리 선수가 공을 빼앗겼을 때에는 땅이 꺼질듯 한숨소리가 일제히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전반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우리 선수가 한 골을 적의 문전에 차 넣었을 때, 장내는 감격과 환희의 도가니였다. TV의 화면을 통해 지켜본 동포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는 엉망이고 경제 또한 바닥을 긴다고 해도 이 국민의 앞날에는 무한한 희망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후반전에도 다시 두 골을 추가하여 3―0이 되었는데도 우리 선수들은 사력을 다하여 뛰고 차며 한 골이라도 더 넣어보려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경기가 끝났다고 심판이 손짓을 했을 때 환호성은 하늘의 별들을 흔들 것만 같았다. 누가 우리를 향해 『내일이 없는 민족』이라고 비방했던가. 어떤 미친 사람이 우리를 향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욕을 했던가.

그날의 축구경기를 관전하면서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 한국의 정치는 왜 이 축구경기처럼 훌륭하게 풀려나갈 수 없는 것일까. 차범근 감독같은 대통령이 있으면 될 것 아닌가. 하석주, 유상철, 이상윤 같은 선수들이 장관 자리에 앉아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될 것 아닌가. 그날 저녁 잠실 주경기장을 메운 7만의 관중처럼 국민이 열과 성을 다하며 힘을 합하면 될 것 아닌가. 한국정치가 잘 돼 나갈 수 있는 비결을 이 축구경기에서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통령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이 하루 하루 바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의 날마다 실시되는 여론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김대중 후보가 계속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고, 2위 자리를 놓고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서로 다투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김종필 조순 두 후보는 좀처럼 오름세를 보이지 않는 주가의 시세표를 보며 의아스러운 느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위 다툼, 막판뒤집기 등등의 낱말이 요새 정치판에서는 흔하게 쓰이고 있는데 이러다간 「선거무용론」이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식으로 여론조사가 각 후보의 지지율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면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선거라는 복잡한 절차를 밟을 필요조차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1위로 선두를 달리는 후보만 등록을 하고 나머지 후보들은 등록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우리가 정치후진국이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대통령도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확고한 가치관이나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같은 대통령이 있어야 하고 그런 대통령후보가 나타나야 하석주, 유상철, 이상윤 같은 선수들이 마음껏 뛸 수 있듯이 장관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꾼들이 생기는 것도 아닐까. 그렇게 되어야만 유권자인 국민도 최선을 다할 의욕에 불타는 것이 아닐까. 그날 그저녁 잠실 주경기장을 메운 무수한 관중처럼 UAE를 꺾고 98 프랑스월드컵을 향해 달리는 우리 축구팀의 감독과 선수들에게서 우리는 하나의 묵시와 교훈을 얻었다고 믿는다. 이 나라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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