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최강국이다. 그런 미국으로부터 우리는 「슈퍼 301조 발동」이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를 당했다. 세계 최강국과의 「총성없는 전쟁」이 시작된 셈인데 우리의 태도는 의외로 의연하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한탄하고 허둥대기보다는 사태를 직시하려 애쓰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서로를 독려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강적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오히려 힘이 나는 것은 왜일까. 「슈퍼 301조」라는 어감도 험악한 위협 앞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다』며 용감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 혼자가 아니고 우리이며, 우리는 옳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
지난주 부산에서 갓 서른을 넘긴 한 청년이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는 기사가 각 신문에 실렸다. 그는 4,5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소년소녀가장과 평소 자신을 도와준 이웃에게 기탁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아홉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외톨이가 된 그는 부산의 한 절에 맡겨져 자랐다. 고학으로 방송통신고와 전문대 치공과를 졸업한뒤 치기공사로 기반을 잡았다.
그런 그가 한창 나이에 느닷없이 목숨을 끊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어 보였다. 있다면 그가 다니던 치기공사가 지난달 불황으로 문을 닫았다는 정도다. 그러나 그 정도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가 남긴 유서에서 그나마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유서에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다 허무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가 돈과 명예와 사랑을 한 손에 쥐었을 리는 없으므로 그의 죽음은 「허무」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그가 이룬 것을 자랑할 사람도, 힘들때 함께 나눌 사람도 갖지 못했다. 결국 외로움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외로움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소년소녀가장들을 떠올린 것은 홀로 남겨진 이의 처절한 고독을 그 자신 뼈저리게 맛봤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윤흥길씨는 4일 한국일보에 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라는 글에서 「역경을 만나더라도 거기가 곧바로 세상의 끝이 아님을 명심하라」며 『누군가로부터, 단 한 사람한테서 만이라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그를 믿고 지켜보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이 가을 혹 곁에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주변을 돌아 보고 그들이 혼자가 아닌 우리임을 느끼도록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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