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혼자 한국에 와서 하숙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당시 누구나처럼 말이 안 통해서 불편을 겪었지만 이 보다도 나에게는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과 생활 습관차이로 인한 불편함이 더 많았다.아주머니는 특별히 나를 예뻐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괴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감사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내 방은 30만원짜리 독방이었는데 6평정도의 크기에 카페트가 깔려있고 옷장 책상 침대까지 있었다. 고생하러 왔는데 완전히 천국이었다. 아주머니는 가끔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셨다. 밥도 아침 저녁은 물론이고 사 먹으면 돈 든다고 점심까지 해주실 때도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꼭 과일이나 빵같은 후식을 방마다 갖다 주셨다.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게 해주고 아침에 못 일어날 때 깨워주시기도 했다. 정말 가족처럼 딸처럼 대해 주셨다. 그래서 내 유학생활은 누구보다도 완벽했고 아무 걱정없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 가 있는 사이에 아주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몇번 입은 옷을 빨아버렸다. 빨아 달라고 꺼내 놓았던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 옷은 드라이크리닝을 해야하는 것이라 세탁소에 맡기려고 두었던 옷인데 모르고 빨아버린 것이다. 옷은 줄어들었다. 세탁기를 돌리는 김에 빨아준다고 내 방에 일부러 들어와 찾아서 빨아 주신 것이라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는 그냥 내놓은 것만 빨아달라고 할 수 밖에….
또 밥을 먹을때 양이 많아 조금 덜어 달라고 하면 다 먹으라며 억지로 주셨다.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게 아까워 그래도 아주머니는 미안해서 그러는 걸로 생각하고 절대로 덜어 주는 일이 없었다. 후식도 그렇다. 사실 나는 어떤 과일에 대해서는 알레르기가 있어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안먹는다고 하면 일본사람의 사양하는 성격때문인줄 알고 억지로 먹인다. 음식을 남기지 말고 다 먹는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남에게 잘해주려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는 것은 한국사람의 장점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때는 지나쳐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주는 게 된다.
나의 경우 이런 일에 익숙해졌지만 어려서부터 자기 일은 혼자 해결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아 아직 남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주면 너무 미안하고 오히려 귀찮다고 느낀다.
그러나 요즘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런 면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내가 살던 하숙집 같은 곳도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런 아주머니는 더욱 없을 것이다.<소림화자·무용가·일본 출신 귀화인>소림화자·무용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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