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역학조사로 대부분 통과되었던 미국산 쇠고기도 최근엔 혈청검사 등 1주일이상 전량조사지난달 27일 상오 10시 부산항.
쇠고기 수입상 K씨는 8월초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쇠고기를 선적한 선박이 입항하자 바짝 긴장한 채 선체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년째 부산에서 쇠고기를 수입해 오면서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터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O―157 대장균 감염여부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들여온 쇠고기는 8월12일 미국 검역당국이 O―157 균을 검출한 네브래스카 IBP사와 가까운 지역에서 도축한 것이어서 더욱 초조했다.
K씨는 긴장과 걱정 속에 수백개의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이 부두에 도착하기 무섭게 수입화물 적하목록을 부산해양수산청 항만합동민원실에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통관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각종 서류검사와 관능검사를 통해 통관 이상유무를 확인받는 데는 2∼3일, 요즘같이 수입물량이 많으면 4∼5일 가량 걸린다.
K씨는 3일 후인 30일 세관으로부터 통관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부두에서 수입쇠고기를 15톤 트럭에 옮겨실은 뒤 정오께 검역시행장인 전용냉동창고에 입고시켰다. K씨가 국립동물검역소 부산지소에 검역신청서를 내자 하오에 검역관 1명이 창고로 나와 본격적인 검역을 시작했다.
동물검역소 부산지소에서 나온 B검역관은 영하 18∼20도가 유지되는 500평 남짓한 냉동창고로 들어가 수입금지대상 품목 여부와 적하목록과의 일치 여부, 수송중 변질 여부 등 관능검사를 했다. 이와 함께 수입과정에서 신고지역이 아닌 곳을 경유했는지 등을 조사하는 역학조사를 실시한 후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해줬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O―157 파문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는 별 어려움 없이 통관됐으나 최근 미국산 수입쇠고기 특히 네브래스카산 쇠고기는 전량조사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에 정밀조사를 받아야 했다. 수입육류는 동물검역소에서 관리하는 AIIS(Automatic Import Inspection System: 수입물품자동검역시스템)란 컴퓨터프로그램에 따라 어느 정도 강도로 검역을 할 것인 지가 결정된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한번 이상 세균이 발견된 지역에서 수입된 물품은 검역을 강화하고 검역체계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 수입된 물품은 검역을 완화토록 하는 각종 검역정보가 입력돼 있다. 전량조사 지시에 따라 정밀검사가 결정되자 검역관은 컨테이너 1개에서 끄집어 낸 쇠고기 중 3곳을 톱으로 각각 300g 크기로 잘라 시료를 채취했다. 이어 시료를 봉투에 담고 냉동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동물검역소로 향했다.
검역관은 검역소에 도착하자마자 각 시료 표면에서 다시 삼겹살 크기로 5∼10개 부분을 도려내 증류수가 담긴 비닐봉투에 넣어 무균상실험대에 올려 증균배양, 분리배양, 생화학적 성상검사, 혈청학적검사 등 각종 검사에 들어갔다. 이 실험실에서 전염병, 잔류물질, 미생물 등 검출 여부를 조사하는 데는 1주일가량이 걸린다.
K씨는 미국산 수입쇠고기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리스테리아균이 새롭게 검출돼 수입육류의 안전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종 검역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연일 노심초사하고 있다.<부산=한창만 기자>부산=한창만>
◎검역,사후관리 시스템이 허술/영은 광우병 파문때 소 400만마리 도살/병해충·유해물질 등 뒤늦게 발견해도 이미 대부분 가공·유통
『마지막 한 마리까지 남김없이 도살하라』 96년 4월, 영국 정부는 광우병이 사람에게 감염될 경우 치사율 100%의 뇌질환인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이 계속되자 마침내 30개월 이상된 소 400만마리를 전량 도살, 소각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유통되어 퍼져나갈 경우 그것이 미칠 부작용과 영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인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각종 잔류물질과 병원성 미생물이 섞여 든 수입 농·수·축산물과 식품이 검역망을 무사통과해 가공, 유통되는 바람에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된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수입상들의 몰지각한 상혼, 검역인력 부족과 검역체계 미비,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늑장 대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88년에는 일본에서 벼물바구미가 유입돼 그 이듬해 벼작황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연간 방제비만 28억원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손실도 컸다.
그외에도 네덜란드 등에서 수입한 튤립에서 발견된 푸른곰팡이병, 미국산 자몽에 섞여 들여온 깍지벌레, 필리핀산 바나나에 묻어 들어온 흑색점무늬병 등 외국 병해충이 국내 농산물에 치명적 영향을 끼쳤다.
92년에는 국립 목포검역소 검사를 통과한 호주산 밀 2,200여톤에서 허용 기준치(0.05PPM)를 무려 16배나 초과한 살균제(치오파트파네이트메틸) 성분이 다량 함유됐음이 밝혀져 뒤늦게 회수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상당량이 이미 통관돼 가공·유통된 뒤였다. 이보다 앞서 89년에는 미국산 자몽의 유해소동이 있었고, 93년에는 미국산 수입 밀 2만5,305톤중 백맥 1만906톤에서 농약변성 발암물질인 MBC(일명 카벤다짐) 성분이 농약잔류 허용치의 무려 132배나 검출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 미국산 농약밀은 다행스럽게도 제분회사에 인도되기 전에 전량 수거됐다.
최근에는 작년 3월에 역시 미국에서 들여온 쇠고기에서 지름 3.5㎜의 납탄 8개가 발견돼 함께 수입된 수입 쇠고기 재고분 3톤을 수거, 폐기처분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납탄을 발견한 것은 정부 산하 검역소가 아니라 시중 대형 할인매장에서 팔리고 있던 이 쇠고기를 사 먹은 한 시민이었다. 탄알이 박힌 쇠고기가 버젓이 시중에 유통돼 각 가정의 식탁에 오를 때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을 만큼 우리의 검역망과 사후관리 시스템에 큰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검역 담당기관 품목별로 제각각/동식물농림 수산물해양수산 가공식품·의약보건복지 3원화/지자체와도 중복 효율성 떨어져
수입품에 대해 검역을 담당하는 기관이 품목별로 나눠져 있어 검역의 효율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 검역 기관은 동물과 축산물을 검역하는 동물검역소, 식물에 포함돼 있는 병원성 미생물과 해충 등을 검사하는 식물검역소, 가공된 수입식품과 마약류 및 의약품 등의 유해 여부를 판단하는 식품의약품안전본부, 수입수산물 검사업무를 전담하는 수산물검사소 등 4개 기관.
이들 기관이 소속된 정부 부처는 동·식물검역소는 농림부, 식품의약품안전본부는 보건복지부, 수산물검사소는 해양수산부로 나눠져 있다. 또 동·식물과 수산물 중 이미 가공된 형태로 수입되거나 시중에 유통될 경우에는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도록 돼있다.
이중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업무와 중복되는 것이 많다. 실제 농산물 등의 세균검사 및 유통기한 등에 대한 단속은 자치단체 위생과 업무와 중복되고 행정력 낭비와 이중 단속에 따른 업자들의 비난이 많다.
이처럼 검역기관이 다원화해 있는데다 상급기관, 유관기관의 눈치까지 봐 소신있는 업무처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동물검역소 부산지소의 경우 지난달 24일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수입된 쇠고기에서 O-157균을 검출하고도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농촌진흥청 수의과학연구소와 다시 공동시험을 거친 뒤 26일에야 공식발표했다. 이에 앞서 세균 검출사실을 알면서도 수출국인 미국과의 미묘한 문제를 이유로 일주일가량 지나 농림부 지시를 받고 나서야 전량검역을 시작했다.
검역기관 내부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95년에는 국립식물검역소 부산지소가 중국산 풀을 관세율이 낮은 남미산 사료용 풀인 앨펄퍼로 위장수입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검사합격증을 교부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농림부 산하 국립동물검역소는 서울 본소를 비롯 부산, 군산, 제주 등 5개 지소와 8개 출장소에서 수의직 155명을 포함 237명이 일하고 있다. 인력 및 장비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그러나 국립동물검역소 부산지소 이홍섭(43) 실험실장은 『국내 검역 수준은 미국, 호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수준이 낮다고 볼 수 없다』며 『미국 등이 무역개방 차원에서 국내 검역조건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차원에서 국민건강을 지키려는 의지가 사실상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늘어나는 검역 수요에 대비해 검역인력 증원과 첨단장비 도입 등 3단계 검역 강화방안을 마련해 오는 2004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검역 기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검역 기관들이 나름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 일방적인 통폐합에는 문제가 있지만 보다 독립성을 갖춘 전문기관으로 통합조정하거나 신뢰성 있는 민간기관이 일부 업무를 담당토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부산=한창만 기자>부산=한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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