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불 ‘투빕 오어 낫 투빕’(오세곤의 연극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불 ‘투빕 오어 낫 투빕’(오세곤의 연극평)

입력
1997.10.04 00:00
0 0

◎만화적 상상력에 정교함 돋보인 야외극인간은 대부분 구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연극 구경은 쉽게 엄두를 못낸다. 뭣보다 일단 극장에 들어서면 재미가 없어도 여간해선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연극을 하면 어떨까? 난점도 많겠지만 분명 상당한 이점이 있다. 즉 출입이 자유로운 열린 공간은 관객들의 마음을 열어 줄 것이고, 그래서 느긋해진 마음은 모든 것을 쉽게 수용할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프랑스 레잘라마스 지브레 극단의 「투빕 오어 낫 투빕」은 야외 공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다. 제목을 직역하면 「의사냐 또는 의사가 아니냐」정도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심각한 「햄릿」 대사에 대한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패러디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별 정보가 없는 일반관객들에게는 제목이 주는 느낌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부담없는 제목에 야외 공연이라 그런지 과천 중앙공원에 설치된 무대 둘레에는 서서 보는 관객까지 빽빽하다.

작품의 소재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분장부터 말과 몸짓, 사건 전개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만화적이다. 만화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듯이 이 작품에서는 의사가 태아를 찾으러 산모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등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 물론 어른보다는 어린이들의 반응이 빠르다. 어른들은 영어 대사를 억지로 새기느라 모처럼 얻은 마음의 여유를 잃은 반면, 어린이들은 평소 만화의 그림을 보듯 상황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직 상태도 몇 명의 관객이 즉석에서 무대로 이끌려 나가 배우들과 함께 해프닝을 벌인 후론 이내 풀리고 만다.

그러나 세밀화가 아닌 만화이므로 정교하지 않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굵은 선 몇 개로 분명한 이미지를 형성하려면 세밀화보다 훨씬 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법이다. 예를 들어 간단히 동심의 하얀 원통형 두 개만으로 단번에 무대가 병원임을 알려주는 것도 놀랍지만 육성으로 수십m 추락하는 거리감을 표현한 기교 역시 칭찬할 만하다.

이러한 정교함과 함께 또 하나 배울 것이 있다면 발상의 자유라 하겠다. 사실 연극도 허구인 바에야 만화나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 없어야 옳지 않은가. 그러한 자유를 우연성의 남발 등으로 저질 드라마에 쓸 게 아니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저녁 먹은 뒤 동네 공원에서 느긋이 즐기는 연극에서도 무한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질 날이 와야 한다.<연극평론가·가야대 연영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