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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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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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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땅인 무주로 간다. 무주 구천동으로 소문 난 왕년의 오지가 지금은 무주리조트로 유명한 대지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충북 옥천IC에서 빠져 이원―학산―괴목을 지나면 3시간반만에 무주리조트에 닿는다. 올해 초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려 세계적인 스키장이 된 이곳에는 오스트리아풍의 고급호텔과 카니발 스트리트에 늘어선 상점들, 산비탈의 콘도 건물들이 협곡을 따라 기다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아직 스키철이 이른데 이 산지에 유명한 영화인 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대종상 영화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27일 개막된 영화축제는 10월4일 저녁 시상식으로 폐막하게 된다. 평소에는 한적한 산간의 스키촌이 일약 영화촌으로 화려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어제의 심심산골이 스타 탄생지로 바뀌었다. 이런 곳에 영화의 명소가 생긴다는 것은 문화의 전국화를 위해 의의가 크다.

축제기간동안에는 각종 행사외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영화들이 모두 일반공개로 상영되고 있어 관객들로서는 지난 한해동안 우리 나라의 대표적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총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문가들이 골라서 추천한 영화만 골라 한해를 며칠 동안으로 축시해서 관람하는 쾌미가 있다.

지난 한해동안 과연 우리 영화계는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그러나 15편의 각 부문 수상후보 작품들을 다 보고나자 남는 것은 한마디로 성과 폭력과 바다와 비였다.

그런 줄 짐작은 했지만 그런대로 수작이라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더욱 두드러져 더욱 놀랍다. 전체 작품들을 통틀어서 노골적인 베드신이 없는 것은 두세편 정도다. 성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다. 성이 없는 영화도 영화일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는 거의 배반당했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오면 온 세상이 나신의 행렬같다. 우리 영화가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빨가벗겨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폭력은 한층 심각하다. 조직폭력배들이 주인공인 작품이 3편이나 올라와 있고 그중 2편은 최우수작품상 후보 5편속에 끼여 있다. 폭력영화가 「장군의 아들」이래 아무리 흥행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또 개중에는 그것이 아무리 작품성이 있다 하더라도, 폭력을 미화하거나 사회에 차지하는 폭력의 비중에 자꾸 무게를 실어준다면 그 영화 자체가 폭력배나 다름 없는 큰 사회문제다.

폭력도 이제는 주먹이나 칼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면도날로 눈알을 도려내거나 뜨거운 촛농을 눈에 붓는 등의 잔학행위도 폭력의 다른 형태다. 루이 브뉴엘이 그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맨 첫 장면에서 면도날로 눈동자를 지익 그은 것이 반세기도 훨씬 전이라면 이제와서 그런 것이 영화기법상의 실험이랄 것도 없다.

영화 폭력 중에서도 전혀 새롭고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언어의 폭력이다. 욕설은 말할 것도 없고 뜻밖에도 『×할년』 『×같은 놈』 따위의 원색적 상소리들이 남자고 여자고 폭력배고 검사고 할 것 없이 멀쩡한 입에서 서슴없이 뱉어져 나온다. 한두편의 영화에서가 아니라 자그마치 15편중 10편 이상이 이런 육두문자의 경연장이다. 영화관에서 나오니 오물을 뒤집어쓴 듯 온 몸이 욕지거리로 절여져 있다. 악취같은 냄새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우러러 무주리조트의 설천봉이 인 높고 맑은 가을 하늘 보기에 창피하다.

이쯤되면 이것은 단순한 스크린 속의 어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속한 말의 유행은 사회 전체를 비속하게 전염시키고 오염시킨다. 이러다가는 야비하고 저속한 사회로 전락하지 않을까 두렵다. 영화가 사회의 병원체여서는 안된다. 모럴이 없는 영화는 부도덕한 사회를 고무시킨다.

수상후보 영화들은 대개 한두번씩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고 관객들을 바닷가로 데리고 가고 또 한두번씩은 비가 쏟아지는 장면이 나온다. 충혈된 눈을 바다에 식히고 까칠한 가슴을 비로 적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성과 폭력이 해독되는 것은 아니다.

35회째를 맞는 대종상은 그 전통과 권위로 우리 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가리켜 주는 시장이라야 할 것이다. 사회정화 뿐 아니라 본시 하얀 스크린도 정화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영화예술을 살리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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