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박제로 남은 시대 한편의 시를 만들기 위해 때론 몇년을 고뇌하는 ‘신서정’의 대표시인/그가 삶에 대한 짝사랑을 다시 힘겹게 노래한다「시인은 이제 흔적이다. 화석이고 박제이다」라고 어느 시인이 이야기했듯, 시인 스스로가 이렇게 시인임을 안쓰러워하는 시대다. 흔적만 남은 시인의 시대, 도처에 시인이 넘쳐나고 있지만 막상 진짜 시인은 화석이나 박제로나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젊은 시인 이윤학(32)씨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저마다 애정을 두는 세상사를 영원히 짝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너무들 쉽게 시를 써 내는 요즘 시단에서 그는 드물게, 그 힘겨운 짝사랑을 시로 쓰는 젊은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일반독자보다는 소수의 시인이나 평론가에게서나 인정받는다. 「90년대 시인군의 선두주자」 혹은 「신서정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그 흔한 문학상 하나 받지 못했다. 동년배 시인 유하가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시 「저수지」는 마음 속에 떠오른 그림을 시 한편으로 옮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런 이씨가 세번째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첫 시집 「먼지의 집」(92년)과 두번째 시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95년) 이후 쓴 시를 묶은 것이다. 문자 그대로 자신에게 천형인 시의 길을 그는 힘겹게 정련해 낸 시어들로 닦으며 간다.
그는 「파먹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전업시인이다. 혹자들은 「연봉 200만원짜리 직업」이라 부르기도 하는 우리 시대의 희귀한 존재인 전업시인. 『어제는 아침 7시부터 20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며 아직 술냄새를 풍기면서 이씨는 나타났다. 「추억은, 폐허를 건너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의 유명한 시구처럼 그는 추억의 힘으로 폐허 같은 세상을 견디려는 자의 눈빛을 갖고 있다.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히려 그에게는 맞지 않은 옷 같이 어색하다.
「길은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 너에게 가는 길은 가뭄 속이다./ 들깨냄새 지독한 길이다. 침묵 속으로 끊어질 듯/ 나 있는 길」(「판교리3-염전」에서). 이 끊어질듯한 길을 그는 「가슴속에 불덩어리를 가두고」 걸어왔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바닷가 고향에서 갯벌의 망둥어를 잡아 매운탕 끓여먹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90년대 서정시의 명편 「판교리」 연작의 판교리는 바로 이제는 폐광된 금광이 있는 그의 고향 인근 마을이다. 아버지가 그 금광에서 일하기도 했다. 많게는 하루 소주 7병까지 마시는 폭음은 천안의 고교로 진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신 내린 듯이 고교 때부터 그는 매일 1∼2병씩의 소주를 마셨고, 재수시절 처음으로 시에 눈을 뜨게 된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에 입학한 후에는 매일 경주의 왕릉에 올라가 소주를 들이키며 이성복의 시집을 읽었다. 「얼마나 뜨거웠던가/ 탐스러운 홍시들은 아직도/ 그 열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암흑 속을, 불빛을 깜박거리며」 에서)는 시구처럼 그는 그렇게 술로 자신 속의 「붉은 열매」 「탐스러운 홍시」를 익혔다. 「설레임이 없는 생은/ 이미 끝난 것이다」(「나무다리 앞에서」에서). 지금은 경주에 동갑내기 부인과 아들(8)이 그와 떨어져 살고 있다. 늘 취해 있는 자신을 보고 아들은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잠만 자는 방」에서)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픈 서정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하고 윤택한 공간과 대비되는 변두리 쇠락한 공간, 스러져가는 것들에서 미학을 추구하는 그의 시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절창이지만 결코 읽기가 쉽지 않다』는 문학평론가 이광호씨의 말처럼 우리 삶에 대한 통찰과 연민으로 아로새겨진 그의 시는 가슴이 저리다. 「내 마음의 밑바닥은 비포장이다/ 시든 풀들을 밀며/ 거친 돌들이 튀어나온다」(「겨울에 지일에 갔다7」에서).
『우리에게는 욕망밖에 남지 않았다』고 이씨는 말한다. 이 화려한 욕망의 세계에서 왜 그렇게 힘든 시인의 길을 그는 택하는가. 「나는 내가 아니기를 얼마나 원했던가」라는 자신의 시구를 말해주면서 이씨는 『선무당이 돼서는 안되겠지만 신 내려 어쩔 수 없이 무당이 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95년까지 4년간 구의역 부근에서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는 카페를 내기도 했던(주로 문우들과 그곳에서 술 마시며 시를 썼다) 그는 이번 학기부터 일주일에 두번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강사로 출강한다.
「천부」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인, 이씨는 이 「불화의 천국」이 「완쾌」(「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비」에서)하기를 빌면서 우리가 배설하는 무절제한 욕망의 파편들을 추스리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90년대 젊은 시인들은 무엇을 시로 쓰고 있는가/도시속 세태풍자 죽음·몸 등 특정주제 천착/전통서정과 시대감각 조화 등 방향은 달라도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공통적
90년대 젊은 시인들은 무엇을 시로 쓰고 있을까. 최근 문학평론가 이남호(41·고려대 교수)씨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젊은 시인들의 「비속함」을 통렬하게 비판한 「현대시와 세속성」이란 글을 발표, 문단에 화제를 일으키면서 이들의 활동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은수(31·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장)씨는 9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작활동을 대략 세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세태에 대한 풍자시이다. 대중문화에 포위된 도시 젊은이의 삶을 그린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의 시인 유하씨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죽음」 「몸」 등 특정한 한 주제를 의식적으로 정해놓고 집요하게 이를 탐구하는 경우로 남진우 채호기씨 등의 시작활동이 그것으로 분류된다. 세번째는 우리 전통적 서정의 맥을 이으면서도 그와 다른 시대적 감각을 담는 시인들의 작업으로 이윤학씨와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의 장석남씨, 김기택씨 등이 속한다. 다만 어느 경우에나 공통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발견된다는 것.
90년대 들어 「문학이 문화로 해체된다」고 표현될 정도로, 문화 과잉의 시대에 급변한 문학환경에 따라 그 활동이 많이 위축된 감은 있지만 동인활동은 젊은 시인들의 주요한 무대다. 이윤학씨는 「시힘」 동인이다. 84년부터 활동해온 「시힘」동인은 안도현 나희덕 이대흠 박형준씨 등 15명으로 곧 동인지 15집 「아름다운 불륜」을 낼 예정이다. 80년대 하재봉 박덕규 류시화 남진우씨 등이 참여했던 「시운동」, 유하 함성호 이진명 김소연씨 등의 「21세기 전망」동인과 함께 「시힘」은 대표적 동인활동으로 꼽힌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약력
◆65년 충남 홍성 출생
◆90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 졸업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제비집」 「청소부」로 등단
◆92년 첫 시집 「먼지의 집」
◆95년 두번째 시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97년 세번째 시집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